한국일보

법률 칼럼-성 소수자 보호법

2020-07-01 (수)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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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15. 미국 대법원은 직장에서 성 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연방 민권법(Civil Rights Act) 제 7조에 의하면 인종과 종교, 국적, 성별을 이유로 고용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돼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조문은 남녀의 성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지 성 소수자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에 기반한 차별도 이에 따라 금지되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민권법은 1964년 흑인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존슨 대통령이 서명한 미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법 중 하나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민권법의 인권보호 범위가 LGBTQ(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and queer)로 약칭되는 성 소수자들, 즉 보편적인 성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은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같은 사람에게도 확대 적용된다.

이번 판결은, 여성 고객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는 100% 게이’라고 밝혔다가 2010년 해고당한 스카이다이빙 강사 도널드 자다(Donald Zarda)를 비롯 남자로 일하다 여자로 성전환 수술을 강행한 후 2013년 해고당한 장의사 에이미 스티븐스(Aimee Stephens), 게이 소프트볼 동호회에 참가해 공무원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2013년 해고당한 조지아주 공무원 제럴드 보스토크(Gerald Bostock) 등 3명이 각각 자신의 고용주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결과물이다. 안타깝게도 소송 주인공 3명 중 자다는 2014년 사고로, 스티븐스는 올 4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번 판결을 두고 미국 성 소수자 단체인 GLAAD는 “성 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공포 없이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환영 성명을 발표했으며, 민주당의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누구나 진정한 자아를 두려움 없이 공개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에는 중대한 순간”이라고 논평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놀라운 판결이다. 대법원이 결정했으니 우리는 따른다”라고 밝혔으나 내심 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간 트럼프 행정부는 성 소수자의 건강보험 혜택 축소와 더불어 트랜스젠더의 군복무 금지,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화장실 사용문제 등 성 소수자 배제정책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2017년 대법관으로 지명한 닐 고서치(Neil Gorsuch)가 트럼프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번 판결을 주도한 것으로 나타나 일말의 인간적 배신감을 느꼈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서치 대법관은 법 원문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을 중시하는 ‘문자주의자’로 유명한 사람이다. 하지만 민권법 자체에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문이 없고, 법 제정 당시 의회가 성 소수자들에게도 법을 적용할 의도가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 소수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다수판결문을 작성했다.

그는 판결문을 통해 고용주에게 능력이 동일한 남녀 두 명의 종업원이 있고 두 종업원 모두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가정할 때 그중 한 명은 남자라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고, 다른 한 명은 여자라서 해고를 당하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민권법이 명백하게 금지하고 있는 성별에 근거한 차별이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성 소수자들을 반대해온 보수파 측 사무엘 알리토(Samuel Alito) 대법관은 “성 차별의 구체적인 내용은 의회가 법으로 규정해야 할 일이지 대법원이 해석해 판결할 일은 아니다. 다수판결문은 ‘문자주의자’의 깃발을 걸고 항해하는 해적선과 같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특히 보수파로 알려진 로버츠 대법원장도 고서치 편에 가담함으로써 6대 3으로 갈라진 이번 다수 판결은 연방 대법관의 정치적 성향 평가를 바탕으로 주요 판결의 결론을 예측해온 그간의 관행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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