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군과 아들

2020-06-19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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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북한은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더니 9.19 남북군사합의를 깨겠다고 한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을 시작으로 남북화해의 길과 통일의 희망을 위해 쌓아오던 모든 일들이 6.25 70주년을 앞두고 물거품이 되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무력시위에 이어 앞으로 미사일 실험도 대놓고 하면서 대남, 대미 압박이 점점 더 커질 것이며 남북관계의 긴장이 한층 고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온 세계가 폐허로 변했지만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부유하고 강한 나라가 되었다. 1944년에 통과된 미군 권리장전인 군인재조정법은 근 800만 명의 재향군인이 가족을 부양하면서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거의 모든 가정이 TV수상기를 갖추고 냉장고, 세탁기 등 최신전자제품에 차도 한 대 지니면서 주말에는 바비큐와 골프, 테니스를 즐겼다. 젊은이들은 보트, 볼링을 하면서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월을 보낼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물질적 부는 누렸지만 세상은 평화롭지 못했다. 1949년 9월 소련이 원자탄을 개발하자 미국은 핵무기 독점이 깨졌음에 경악했고 바로 그 다음 달 모택동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호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공산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1950년 6월25일 오전4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을 침공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연합군과 중화인민공화국, 소비에트 연방까지 관여하여 치열한 전투를 치렀고 1953년 7월27일에 휴전이 되었다.

현재 미국 내 한국전 기념물은 100곳이 넘는다. 워싱턴 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을 비롯, 40개주, 특히 동북부 지역에 비석이나 벽, 건물, 기념공원 등이 많이 있다. 참전용사 이름이 새겨진 석판이나 조형물을 보면 그 당시 막 세상살이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하던 청년들이 떠오른다.

이들 중에 한 장군과 아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매년 뉴욕 맨하탄 플라자호텔에서 ‘코리아 소사이어티’ 주최 밴플리트상 시상식이 열린다. 1992년 제정된 밴플리트상은 한미관계 증진에 공헌한 양국 국민을 선정한다. 밴플리트 장군은 워커 장군 후임으로 1951년 3월 미8군 사령관으로 한국에 왔고 그 아들 조지도 뒤이어 참전했다.

미육군 군사연구소(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에 보관된 한 문서가 있다. 밴플리트 장군이 리지웨이 유엔군 총사령관에게 보낸 전문이다. “공군은 내 아들 지미의 실종 후 최선을 다해 수색했다. 나는 더 이상의 수색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내아들 지미가 한국전쟁에서 희생당한 16만명이상의 사상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 위안을 찾는다.”

아버지이기에 앞서 한국전쟁 지상군 최고사령관으로서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자 장군은 외아들의 수색을 중단시켰다. 아들 지미는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공군 폭격기 조종사로 전쟁터로 오면서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어떤 순간에도 두려움이 없이 최선을 다할 것, 이것이 저의 의무’ 라는 각오를 보인 지미는 결혼해 한 살 된 아들도 있었다. 지미는 1952년 4월 압록강 남쪽 중공군이 몰린 평안도 순천 지역을 폭격하러 출격한 후 실종되었다.

한국전쟁에 미국은 연인원 178만명이 참전했으며 3만7,000~ 5만4,000여명(?)이 전사하고 8,000여명이 실종 또는 포로가 됐다. 이 중 142명의 장군의 아들들이 참전해 35명이 사망, 실종, 부상을 당했다. 아들이 전쟁에서 전사하는 것을 가문의 명예로 생각하는 아버지, 꽃피는 청춘에 낯선 나라에서 죽어간 아들, 군인의 명예와 책임을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긴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도, 미국도 있다.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군 투입’을 하려하자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 우리는 지금 그런 상황에 있지 않다. 나는 (군 동원에 의한) 폭동진압 발동을 지지 않는다”고 소신 있게 발언했다. 군인이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는 자가 있어 앞으로의 미국, 걱정 안해도 될 것같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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