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법률 칼럼 - 범죄인 인도조약

2020-06-03 (수) 손경락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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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대 아동 음란물 사이트 중 하나인 ‘웰컴 투 비디오’의 운영자 손정우에 대한 미국의 범죄인 인도요청 심사·재판이 얼마 전 한국의 고등법원에서 열렸다.

손씨는 2015~18년까지 특정 브라우저로만 접속할 수 있는 다크웹을 통해 총 22만여 건의 영유아 성착취 영상물을 유통시킨 혐의로 1년 6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한국에서의 형기를 마쳤다. 손씨는 이같은 범행으로 32개국의 유료 가입자 3,400여 명으로부터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으로 수십억 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손씨는 한국에 서버를 두고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한국법에 따라 죄값을 치렀으나 문제는 국경이 없는 사이버범죄의 특성상 미국과 영국 등지 가입자들과의 양형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이들 해외 가입자들은 해당 사이트에서 동영상을 다운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자국에서 5년 이상의 중형을 받고 아직 복역 중인 사람들이 많은데 반해 주범의 형량이 오히려 그보다 가벼웠기 때문이다. 2년 전 한국경찰과 함께 손정우의 검거에 참여했던 미국 사법당국은 한국의 솜방망이 처벌을 보고 손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고 그 심문이 지난 5월 19일 고등법원에서 열린 것이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은 범죄행위로 인한 자국민의 피해를 용납하지 않고 끝까지 본국으로 송환시켜 미국법으로 응징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 검찰은 1987년에 금세기 최대의 마약상으로 악명을 떨쳐 미FBI가 선정한 ‘세계 10대 지명 수배자’ 명단에 2번 연속 이름을 올렸던 멕시코인 ‘엘차포’를 기소한 후 끝내 2017년 멕시코로부터 그를 넘겨받아 연방 재판에 회부한 바 있다.

엘차포는 멕시코 수감 시절 교도관을 매수, 빨래 바구니에 몸을 숨겨 탈옥한 적이 있는가 하면 다시 체포된 후 2015년에는 1.5km 교도소 밖 건물까지 땅굴을 파 탈옥에 성공한 전설적 인물이다. 지금은 미국법원으로부터 종신형을 선고받고 최고의 보안 수준을 자랑하는 연방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엘차포처럼 손정우 사건도 그 연장선 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범죄혐의가 인정되어 미국 재판에 넘겨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재판과 수형생활에서 여러모로 불리할 것이 뻔한 타국 땅에 자국민을 넘겨주는 것은 인도적 문제뿐 아니라 자국민을 우선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기본책무에 반하기 때문에 입장 정리가 쉽지 않다.

범죄인 인도조약은 몇 가지 원칙을 따르는데 쌍방가벌성, 범죄특정의 원칙, 이중처벌금지 등이 바로 그것이다. 쌍방가벌성은 인도 대상 범죄가 인도를 요청한 청구 국가와 피청구국 양측 모두에서 범죄에 해당할 때 넘겨줄 수 있다는 것이고 범죄특정의 원칙은 범죄인을 인도받아 재판할 때 인도 청구시 나열한 범죄에 대해서만 처벌할 수 있다는 법리이다.

이중처벌금지는 말 그대로 동일 범죄에 대해 거듭 처벌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원칙이다. 손정우의 아버지는 아들이 이 원칙에 따라 차라리 한국에서 재판을 받는 게 유리하다고 보고 자기 아들을 범죄수익은닉 혐의로 한국 검찰에 고발해놓은 상태이다. 같은 죄명으로 미국에서 재판을 받을 경우 형량이 한국보다 4배나 많아지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은 중범죄자의 신병 인도를 골자로 하는 범죄인 인도조약을 1998년 체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1997년 서울 이태원에서 살인을 저지른 후 미국으로 도주한 주한미군 아더 패터슨(Arthur Patterson)을 18년 만인 2015년에 한국으로 송환한 사례가 있다.

자국민을 우선 보호해야 하는 국가적 책무와 사안의 경중 차이는 있지만 이태원 살인범의 송환사례, 아버지가 세간의 비난을 무릅쓰고 아들을 위해 먼저 고발 조치한 법적 절차 등 여러 문제가 뒤엉켜 한국 사법당국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사뭇 향배가 궁금하다.

<손경락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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