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려움

2020-05-01 (금) 원공 스님/한마음선원 뉴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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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이 글은 에게해 크레타섬에 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의 묘비명이다. 나의 관점에서는 문학적으로 표현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참된 자유는 불교의 해탈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는 수행의 핵심이다. ‘나’까지도 놓아버려서 두려워할 나가 없는 것이 자유다. 카잔차키스의 이 바램은 불교 수행의 목표이다.

코로나 19 사태로 사찰의 문을 닫고 일요일에는 Online 법회를 한다. 다행히 몇 분의 신도님들이 가벼운 증상만 있었고 한 연로한 신도님은 고비는 넘기고 안정되어 간다는 소식이다. 요즘은 생로병사의 문제가 더 깊게 다가온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처럼 일체의 두려움에서 모두가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에게 두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두려움은 어떻게 극복하는가?

부처님께서는 ‘두려움과 공포의 경’에서 깨달음을 얻기 전 수행하실 때에 두려움을 극복하신 이야기를 하신다. “… 몸의 행위가 청정하지 못한 수행자가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 거주하게 되면, 몸의 행위가 청정하지 못한 것으로 인해 그는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올 것이다. … 나는 몸의 행위가 청정하다. …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몸의 행위가 청정함을 보면서 더욱 더 숲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다. …” 이 경에서 부처님께서는 16가지 공포의 원인을 말씀하신다. 첫 번째로 청정하지 못한 행위에서 공포가 온다. 청정한 행위로 공포를 극복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두려움은 살생과 같은 청정하지 않은 행에서 온다. 두려움은 생각이 없어도 무의식적 반응으로 일어난다. 그러면 무의식에 있는 무엇이 원인이다. 과거의 행위가 내 안에 기억(흔적)된 것을 업(까르마)이라 한다. 그러한 청정하지 못한 업이 원인이 되어 두려움은 일어난다. 그러므로 과거의 청정하지 못한 행위의 흔적을 비워서 마음이 지혜와 자비로 밝을 때에는 두려움이 일어나지 않아서 항상 어디에서나 평안하다.
한 고승에게 중년의 부인이 찾아왔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어둠 공포증이 있었는데 치료를 해도 고칠 수 없었다. 노스님께서는 전생의 바르지 않은 행위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녀는 전생에 어느 마을에 사는 가난한 남자였다. 마을 입구에 사는 한 사람이 달이 없는 캄캄한 밤이면 길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집 앞에 기름 등불을 켜 놓았는데 그는 한밤중에 그 기름을 훔쳐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어둠의 공포를 느끼게 했다. 그래서 이 생에서 극심한 어둠 공포증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녀는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고 수행하여 어둠의 공포에서 벗어났다.

지금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답답함, 우울함, 두려움이 일어나 마음이 평안하지 못하다면 그 원인을 밖에서 찾으며 환경을 불평하기 보다는 내 안에 나의 행복을 뺏아가는 불순한 것들이 있구나 생각하고 그것들을 모두 비워서 나의 마음을 본래의 고요하고 맑고 밝은 행복한 상태로 되돌려 놓아야겠다는 마음을 일으켜 바르게 수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진흙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는 것과 같을 것이다.

<원공 스님/한마음선원 뉴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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