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Before Corona, After Corona
2020-04-09 (목)
광전 스님 (SF여래사 주지)
우리가 살고 있는 베이 지역에 `스테이 홈` 명령이 내려진지 벌써 3주가 되어간다. 한없이 맑고 푸른 하늘과는 달리 뉴스에서 전해오는 소식은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할 이야기뿐이다.
불현듯 오래전에 읽었던 보카치오(1313~1375)의 『데카메론』이 떠올랐다. 중세에 페스트(흑사병)가 유행할 때 이탈리아 피렌체 교외에 있는 별장에 모인 10여명의 격리자들이 서로 위로하며 심심함을 달래기 위하여 나눈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이 『데카메론』이다. 전염병의 어려움을 함께 하면서 나눈 대화가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1347년부터 1350년에 걸쳐 유행한 페스트는 유럽에서만 약 2000만에서 3500만 명가량의 희생자를 낳았다. 이 대대적인 유행은 영주를 포함한 기사와 성직자 계급이 지배하던 중세 유럽의 봉건 제도를 뿌리째 뒤흔들었는데, 사회 질서뿐만 아니라 경제의 흐름이나 개인의 가치관에도 광범위하고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페스트로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은 것은 교회의 권위였다. 전염병이 돌자마자 추기경이나 주교와 같은 고위 성직자가 앞 다투어 도망치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은 더는 교회를 존경하지 않게 되었고, 많은 성직자가 병으로 사망한 후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자질이 부족한 성직자가 대거 등장하자 평판은 더욱 추락했다. 또 기도나 고행이 병의 예방이나 치료에 전혀 효과가 없음을 알게 된 사람들은 전염병이 인간의 죄에 내리는 신의 벌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에 회의를 품게 되어 후일 종교 개혁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중세 장원 경제를 떠받쳐 왔던 농노제 또한 유명무실해졌다. 역병으로 도시 인구가 거의 절반으로 줄고 노동력이 귀해져 임금이 오르자 농민들은 도시로 이주했다. 그 결과 지주들이 농업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되어 농촌에서 농노가 없어지고 소작농이나 자작농이 생겨나 오랜 기간 유럽의 근간을 이루던 봉건 제도는 몰락하고 말았다.
우리는 지금 한편으로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여러 사회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중세에는 페스트가 유행하는 지역에서 멀리 피하는 방법으로 생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지구촌이 거의 실시간으로 소통되는 세상인지라 다른 나라의 어려움이 내일이면 우리의 어려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오히려 우리가 서로 얼마나 상호의존적으로 연기(緣起)적인 존재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생태계 파괴, 계층 간 의료를 포함한 복지제도의 불평등성 등 무수한 문제들이 이번 위기를 겪으면서 드러나고 있다. 미국사회는 대규모의 경기부양책으로 사실상의 ‘기본소득’을 만들어낸 셈이고, 국가적 차원의 의료 시스템과 사회안전망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은 미국 사회를 크게 바꿔놓을 것이다.
BC를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 AC를 ‘코로나 이후(After Corona)’로 부르며 ‘세계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이야기 나온다. 우리 인류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커다란 위기로 다가왔다. 위기라는 말은 위험과 기회의 합성어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또 한 번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갈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했던가. 스스로를 가두고서 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 모든 인류가 인종, 민족, 종교에 상관없이 지구라는 한 배를 탄 공업중생(共業衆生)임을 자각해야 한다. 즉 타인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할 수 있음을 말이다.
하루 속히 세상의 모든 존재가 병고(病苦)와 생활고(生活苦)로부터 자유로워지길 기원한다.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를타야 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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