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손님 없다고 마냥 기다릴 수 없죠”…자영업 리얼 생존기

2020-04-01 (수) 김주영 박지윤 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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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ew& 코로나19 직격탄으로 식당 텅텅, 운영 33년만에 도시락 만들어 팔고…치킨·떡볶이 메뉴 추가해 배달 시작

▶ 빵집선 ‘자영업 파이팅’ 간식 만들고 소독제 이윤 없이 병원에 공급 등 힘든 상황 속 서로 의지하며 버텨

“식당 33년 만에 처음으로 도시락을 만들었습니다.”

대기업과 관공서가 밀집한 서울 세종대로에서 낙지전문점을 운영하는 박경숙(63)씨가 말했다. 1988년 식당을 시작한 박씨는 그동안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 메르스사태까지 숱한 위기를 꿋꿋이 버텨 왔다.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도, 블로그나 SNS에 홍보 이벤트를 한 적도 없지만 박씨의 식당은 항상 손님들로 붐볐다.

“음식 맛과 재료의 질, 철저하게 기본으로 승부했고 손님들로부터 인정받았다”고 박씨는 확신했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인근 사무실마다 재택근무로 인해 출근자가 줄고 출근해도 회사 밖을 나서지 않으니 식당은 텅텅 비기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화되면서 하루 종일 열 테이블도 받지 못하는 날도 생겼다.


“가만히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나.”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박씨는 도시락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식당 운영 33년 만에 처음이다. 다행히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점심시간 외부로 나서기를 꺼리는 직장인들은 물론, 단체 주문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박씨는 “그나마 도시락을 납품하게 돼 잠시 숨구멍이 트였다. 어떻게든 버티고 있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긴 한숨을 지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은 지금 살아남는 것이 목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버티면 희망이 올 것’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 믿으며 손님을 끌 아이디어를 짜내는 중이다. 평범한 한식집에서 만든 도시락 메뉴 외에도 1인용 생수와 반찬을 각각의 손님에게 제공하는 칼국숫집, 마스크를 무료로 제공하며 손님 유치에 열을 올리는 곰탕집 등 다양하다.

평상시 같으면 생각도 하지 않을 메뉴를 시도하기도 한다. 종로구 낙원상가 인근의 한 고기와 냉면 전문점은 얼마 전부터 떡볶이와 치킨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코로나19에 감염될 경우 치명률이 높은 노년층이 주 고객이다 보니 손님 발길은 두 달 가까이 뚝 끊겼다. 24일은 오후 3시가 돼서야 첫 손님이 나타날 정도였다.

사장 배종수(58)씨는 “홀 손님이 70% 이상 줄어서 마감이라고 할 것이 없다”고 푸념했다. 그래도 살 방도를 찾아야 했던 배씨는 좁은 주방 한 구석에

떡볶이와 치킨 조리 공간을 만들고 온라인으로 배달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배씨는 “인터넷 세대가 아니라 적응이 힘들다. 배달 보낼 때 음료수 하나라도 빠트리면 다시 보내야 하기 때문에 대행비 7,000원이 더 든다”면서도 “버는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니 그래도 활력이 생긴다” 고 말했다.

종로구 인사동에서 24년째 사주를 보고 있는 김모(63)씨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 온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하루에 못 봐도 10명은 봤는데 요새 한두 분 정도만 봐도 다행인 상황이다. 그나마 오시는 분은 단골뿐이다”고 전했다. 김씨는 그나마 힘이 되는 단골손님과 연이 끊길까 봐 전화 상담에 온 신경을 쓰고 있다. 김씨는 “전화로라도 보겠다는 분이 있어서 다행”이라며 “하루빨리 편하게 얼굴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다른 상인들을 다독이며 희망을 잇는 이도 있다. 지난달 중순 경기 시흥에서 유기농 제과점을 연 장석희(24), 정윤흠(24)씨는 23일 인근 상가 10곳에 자신이 만든 빵을 돌렸다. 아직 자리조차 잡지 못한 그들이지만 다른 상인들을 위해 포장지에 ‘자영업 파이팅! 코로나 조심하세용~’이라고 적었다. 장씨는 “다들 어렵다 보니 오며 가며 전하는 ‘파이팅 하자’ ‘힘내자’는 한 마디가 큰 위로가 된다. 주변 상인들이 좋아해 주셔서 정말 기뻤다”고 말했다.

당장의 이윤 추구보다 주변의 어려움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해결하려는 이도 있다. 성북구에서 유통업체를 운영하는 이규원(34)씨는 지난달 말 중소 병원들이 소독용 에탄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에탄올 수요가 폭증하면서 가격이 크게 오른 탓이다. 이씨는 9년간의 유통업 경험을 살려 제조자와 직접 접촉해 제품을 다량 확보했다. 이씨는 현재 유통비용을 제외하고 이윤도 붙이지 않은 가격으로 중소병원 등에 소독용 에탄올을 공급하고 있다. 이씨는 “우리 삶이 예전처럼 유지될 수 있도록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당장 눈앞의 이익만 보고 움직인다면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주영 박지윤 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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