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칼럼] 시므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2020-02-20 (목)
박상근 목사 / 새크라멘토한인장로교회 담임
이스라엘 민족의 영원한 영웅이었던 다윗의 삶은 사실 평판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는 사울왕에 의해 조작된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광야로 도망 다니며 무진 고생을 해야 했다. 사울이 죽고 드디어 왕이 된 다윗은 행복했을까? 진짜 불행이 다윗을 기다리고 있었다. 밧세바 사건은 제외하더라도, 아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아비로서 다윗이 겪은 고통이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다윗을 가장 비참하게 했던 진짜 고통은 따로 있었다. 형을 죽인 살인범 압살롬을 다윗이 그래도 사랑하여 용서하고 받아주었건만 그 아들이 결국은 왕위를 노려 아버지를 죽이려고 반란을 일으켰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다윗 전 생애의 가장 큰 비극이 닥친 것이다.
얼마나 압살롬의 반란이 전격적이고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는지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백전노장 다윗조차 맨발로 피난을 가야할 정도였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아들의 칼날을 피하여 한 밤중에 잠옷차림으로 도망가는 초로의 왕을 한번 상상해보라. 그보다 더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은 창피함이었을 것이다. 울며 도망가는 다윗이 얼마나 신하들 보기에 창피했을까? 정적도 아닌 자신의 아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니! 그것도 황태자를 죽인 대역죄를 용서해주고 품었던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으니 더욱 신하들 보기에 면목이 없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다윗 인생은 이제 끝난 것 같았다. 다윗 생애의 목자가 되어주셨던 여호와 하나님도 드디어 다윗을 버린 것인가!
다윗 생애를 통해 다윗이 보여준 위대함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볼 줄 알았던 자기 객관화 훈련이 탁월했다는 점이다. 다윗은 언제나 위기 가운데서 더욱 빛을 발하는 영성의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줄 아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다윗 전 생애의 가장 큰 비극으로 기록된 압살롬의 반란 사건으로 다윗의 인생은 완전히 끝장 난 것처럼 보였다. 대부분의 신하들도 그렇게 판단해서 압살롬을 지지하며 다윗을 배신하고 변절해갔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이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증명해주는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중심을 테스트하기 위한 시험대였는지도 모른다.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실 수밖에 없는 대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비참한 마음으로 피난 가는 다윗에게 덧난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저주하며 돌을 던진 시므이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시므이는 죽은 사울의 후손으로 사울의 죽음과 사울왕가의 몰락이 다윗 탓이라고 생각하고 적개심을 키워 온 인물이다. 시므이의 입장에서 다윗의 몰락은 얼마나 통쾌했을까? 그래서 그는 피난 가는 다윗을 계속 따라가며 돌을 던지고 침을 뱉고 저주를 퍼부었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울면서 맨발로 걸어가고 있는 다윗의 입장에서는 더욱 비참한 생각이 들고 마음이 위축되었을 것이다. 심각한 것을 시므이의 저주를 함께 피난가고 있는 신하들이 다 듣고 있었다는 점이다. 졸지에 피난 가는 상황에서 사기는 바닥에 떨어지고 더욱 침통했을 것이다. 보다 못한 아비새가 단칼에 시므이의 목을 베겠다고 다윗에게 청했다.
그 때 다윗은 시므이를 죽이지 못하게 했다. 시므이의 입을 통해서 지금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저주하시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다윗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아마도 이런 다윗의 모습이 하나님 마음에 합하지 않았을까? 당신이 목사라면 당신 생애에도 반드시 시므이가 등장할 것이다. 잊지 말라. 시므이는 손대는 법이 아니다. 시므이를 향해 칼날을 뽑는 것은 결국은 자신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시므이는 그냥 두고 자신의 갈 길을 가라.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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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근 목사 / 새크라멘토한인장로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