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유로운 혼을 위한 영가

2019-10-26 (토) 12:00:00 송윤정 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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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겨울 바다. 무작정 동해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 종점에 내렸다. 오솔길을 따라가 마주친 바다. 커다란 암석에 철썩대는 세찬 물결을 바위 위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온몸이 산산이 조각나는 파도와는 달리 저만치 수평선 바다는 파란 햇살에 은빛 보석을 잠잠히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 바위 위에 얼어붙은 듯 한참을 서 있었다. 부질없이 힘겨운 이 세상을 그곳에서 마칠 마음으로 그곳에 다다랐는데 눈부신 햇살과 먼 바다가 나를 마냥 바라보게 하고 있었다. 먼 바다를 바라보던 내 시선을 발 아래로 가져오니 철썩이는 바다는 어서 내게 오라고 나를 부르는 듯도 했다.

그 함성 같은 소리에 빨려들려는 순간 두 손이 내 등 뒤에서 나를 붙잡았다. 엄마의 거친 두 손이었다. 나는 그 순간 엄마의 영혼이 손의 느낌으로 다가왔었다고 확신한다. 그렇게 나는 세상으로 돌아왔다.


의사로 많은 환자의 죽음을 지켜보고 또 불치병과 말기 암 환자들을 돕기 위한 심리치료의 선구자며 저자인 나오미 레멘 박사는 저서 <식탁에서 주고받는 지혜>에서 말한다.

“삶의 어느 부분에선가 우리가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진정한 사랑이 필요하다. 얼마나 많은가는 중요하지 않다. 때때로 단 한 사람의 사랑일 수도 있다. 나는 종종 나의 환자들에게 묻는다. 그들을 견디게 해 준 사랑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린 시절 알코올 중독과 학대하는 가정에서 자란 어느 한 환자의 경우 그 사랑은 그의 개였다.”

그녀의 자살 소식을 듣고 매섭게 차갑고도 눈부시게 새파랗던 그 겨울 바다가 떠올랐다.
그녀의 시리도록 어여쁜 앳된 얼굴사진이 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내 딸의 얼굴 같기도 하고, 겨울 바다를 홀로 하염없이 바라보던 내 마음이 그 안에 든 듯도 하였다. ‘마지막 순간에 그녀를 잡아 줄 한 사랑이 없었는가?‘ 안타까웠다.

자유로운 혼을 지닌 이들의 삶은 외롭다. 관습이라는 테두리 밖에 서서, 동질성을 강요하는 무리에 저항하며 살든지 자신을 부인하며 관습에 복종해야 한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SBS가 설립되어 공채 1기 광고가 나왔다. 그때 한 친구에게 “같이 응모해볼래?”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친구가 “얘, 너나 나나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 된다고 하면 집에서 쫓겨나든지 머리 깎기고 갇혀서 학교도 못 다닐 거다”하고 쏘아 붙였다.

그 후 나는 나의 자유로운 혼을 가두고 관습이 원하는 삶의 길을 걸어왔다. 관습이 권하는 ‘-사’자 붙는 직업을 택하고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고. 관습에 얽매여 살아온 20여 년의 세월. 나이 마흔이 지난 어느 가을날, 나는 매주 주말 으레 하던 빨래를 개다 말고 창밖 눈부신 가을 하늘을 보며 통곡했다.

직장인으로, 주부로, 엄마로, 관습이 요구하는 모습에 나 자신은 으스러져 사라진 듯했다. 관습이라는 말뚝에 길들여진 개와 같은 나는, 이 다음에 아이들이 다 자라 직장을 그만둔다 해도, 혼을 잃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말뚝 주변만 서성이게 되지 않을까.

지난 20년간 한국을 떠나 살아온 나는 외신으로 보도된 그녀의 죽음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과 사진을 보았다. ‘설리, 본명 최진리‘ 한국사회의 편견에 세상 밖으로 내몰린 자유로운 혼. 비바람이 거센, 가을이 깊어가는 날, 나는 흑인 영가인 ‘깊은 강(Deep River)’을 들으며 기도한다. 노예의 비통한 삶에서 요단강을 건너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갈망했던 것과 같은 마음을 지닌, 자유로운 혼을 지닌 모든 젊은이들이 온전히 자신의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 수 있기를,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편견이라는 악령에 사로잡힌 내 모국이 그 악령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온종일 비구름에 어두침침하던 하늘 저편에서 구름이 조금 걷힌다. 세찬 바람에 흔들리던 나무도 작은 잎의 살랑임만 남긴 채 잠잠해져 간다. 어두운 밤이 오기 전 개인 하늘의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었으면.

<송윤정 금융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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