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돼지, 에스더’의 에스더와 스티브 젠킨스(왼쪽), 데릭 월터(오른쪽). [유튜브 캡처]
부동산 중개업자와 마술사가 돼지와 사랑에 빠져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 마술 같은 이야기가 있다. 캐나다에 사는 스티브는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에게 ‘미니돼지’ 한 마리를 입양하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더 이상 반려동물을 늘일 형편이 아니었건만, 스티브는 미니돼지를 덥석 데리고 온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기 돼지는 미니돼지가 아니라 사육용 돼지였다. 운동화만 했던 아기 돼지 에스더는 3년 만에 300㎏의 육중한 몸매가 된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게 된 두 사람. 좁은 집에서 돼지와 함께 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에스더는 너무 사랑스러웠고, 두 사람은 에스더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된다.
에스더와 함께 사는 일상을 올리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페이스북 페이지로 이들은 단숨에 138만 팔로워를 거느리는 유명 가족이 된다. 그리고 에스더의 팬들과 온라인 이웃들의 도움으로 교외 농장을 사서 농장동물 보호구역을 열기에 이른다. 마술사와 부동산 중개업자가 학대 받은 농장동물들을 구조하고 돌보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감동과 유머로 가득한 책인 ‘대단한 돼지, 에스더’(Esther the Wonder Pig)를 읽으며, 나의 돼지 친구 십순이와 돈수를 떠올렸다. 돼지에 대해서라면 돈가스 아니면 저금통밖에 몰랐던 나는 실제 돼지들이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전혀 관심 밖이었다. 2010년 말 구제역이 몰아쳤고, 무려 350만마리의 소, 돼지가 산채로 구덩이에 밀어 넣어지는 아비규환을 보고서야 비로소 나는 이름 모를 ‘고기’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내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는 그렇게 시작됐다.
돼지의 ‘돈격’을 존중하는 유기농 농장에서 돼지들의 일상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나는 돼지가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고 오해 받는 동물임을 알게 됐다. 돼지는 더럽고 미련하고 욕심 많은 동물이라는 세상의 편견과 달리, 자는 곳과 배변하는 곳을 스스로 가릴 정도로 영리하고 깔끔한 동물이었다. 또 적당히 먹을 만큼만 먹었다.
엄마 젖을 먹다가 곤히 잠들던 돈수는 내 아기와 다를 바 없이 사랑스러웠다. 십순이는 새끼들이 젖 먹을 때 행복한 꿀꿀 소리를 냈고, 새끼들과 억지로 떨어져야 했을 때 무척이나 슬퍼했다. 나는 사람 엄마와 돼지 엄마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한국인들은 연간 1,500만~1,600만 마리의 돼지를 먹는다. 과도한 육식을 위해 돼지들은 공장식 축산 우리에서 밀집 사육된다. 암퇘지들은 감금틀(스톨)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는 채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다 새끼 낳는 ‘성적’이 떨어지면 도살장으로 끌려간다. 새끼들은 태어나자마자 꼬리와 이를 잘리고 수퇘지들은 마취 없이 거세당한다.
체코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진정한 선함은 그 대상이 힘이 없을 때에만, 순수함과 정직함이 드러날 수 있다. 인류의 도덕적 시험, 그 근본적인 시험은 인류한테 목숨이 달린 자들, 즉 동물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있다. 그런 점에서 인류는 근본적인 대실패를 겪고 있다. 그 실패는 너무나 근본적이어서, 다른 모든 실패들이 여기에 연유한다.”
사람이 공장 부품처럼 취급되다 버려지고, 대량소비와 대량폐기가 지구를 초토화시키고,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또 다시 살처분이 진행되는 슬프고 참담한 실패들의 근원을 생각한다. 실패를 성공으로 바꿀 마술이 어디 없을까. 돼지가 단지 식재료가 아니라 유머와 감성을 가진 온정 넘치는 생명임을 알게 되면서, 나의 밥상이 바뀌고 관계가 달라지고 삶이 변하고 스티브와 데릭도 바뀌고 수많은 사람들이 변화했다. 그러고 보니 진짜 마술사는 데릭이 아니라 에스더와 십순이였고, 사랑은 세상의 모든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놓을 강력한 마술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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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 영화감독ㆍ‘사랑할까, 먹을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