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연과 인간이 ‘진지하게’ 만나는 곳, 식물원

2019-10-16 (수)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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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 속 오아시스 그 이상, 식물원
베이징, 다양성 보전 위해 종자 수집...뉴욕, 원예교육 프로그램만 500개

▶ 영국선 탄광지역 폐허 위에 만들어 생태 복원의 가치 생생하게 보여줘

그저 관상의 대상이던 식물이 이젠 반려의 존재가 됐다.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고, 집안을 식물로 꾸미는 플랜테리어(플랜트+인테리어)도 인기다. ‘콘크리트 정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갈증이 높아지면서 도심 속 식물원에 대한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임시 개방한 이래 서울식물원에는 벌써 359만명이 몰려들어 이를 실감케 했다.

◇식물원에서 녹색도시의 미래를 보다

식물원 하면 으레 ‘도심 속 오아시스’로만 여기기 쉽다. 기후변화와 도시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식물원의 진짜 중요한 역할은 예사로 간과된다. 영국 런던에서 기차로 다섯 시간 거리의 탄광도시 콘월에 위치한 식물원 ‘에덴 프로젝트’는 ‘생태 복원의 시작’을 기치로 내걸고 문을 열었다. 폐허가 된 탄광 지역에 사람들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에덴 동산’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지난달 26~27일 열린 ‘2019 서울식물원 국제 심포지엄’ 참석 차 방한한 데이비드 하랜드 에덴 프로젝트 최고경영자(CEO)는 “사람들이 실제 식물을 보고 만져보게 하면서 우리가 자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자는 취지였다”며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탄광을 녹지화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이젠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식물원이 사람과 자연의 연결고리가 된 것이다.


실제 인류는 위기에 직면해있다. 국제연합(UN)은 2050년이면 전세계 인구가 90억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토지와 산림은 자꾸 줄어드는데 인류 생존을 위한 식량은 더 많이 필요해진다. 과거 120년 동안 지구 평균 온도는 0.8도 이상 높아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식물종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누가 뭐래도 식물은 생태계 유지와 인간 생존에 있어 가장 기본이 다. 식물 자원을 체계적으로 보존ㆍ관리ㆍ복원하는 식물원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희귀ㆍ멸종위기식물을 국내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한택식물원의 강정화 이사는 “기후변화에 대비해 가능한 최대한 많은 종을 수집하고 관리하고 있다”며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원산지인 ‘알로에 디코토마’를 갖고 있는데 자생지에서 멸종됐을 때 대비해 보험에 들어놓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택식물원은 종자 번식은 기본으로 다양한 식물 번식 방법을 연구해 대량번식 시킨 후 이를 다시 보급하는 데도 공들이고 있다.

중국 베이징식물원이 대표적이다. 중국과학원 식물연구소에서 별도 식물원으로 분리된 1996년 당시만해도 식물원보단 농장에 가까웠지만 식물 다양성을 위한 새로운 종자와 식물 수집에 전문성을 쌓으면서 명실상부한 식물원으로 거듭났다. 식물 수집을 전담하는 팀만 18개가 있다. 중국 서부ㆍ북부뿐 아니라 위도 40도 이상 고지대에서 사는 식물도 수집한다. 왕캉 베이징식물원 박사는 “자연스럽게 대중들에게 식물과 인간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됐다”며 “20년 전만 해도 어떻게 빨리 키워 먹을지 여부가 사람들의 관심사였지만 이젠 어떻게 하면 보존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고 전했다. 베이징식물원의 무게 중심도 자연스레 생물다양성 차원의 보존으로 옮겨갔다. 왕 박사는 “20년 전 겨울에 얼어 죽어 베이징에서는 자라지 못한 식물이 이젠 급속한 기후변화로 베이징에서도 잘 자란다”며 “시민들에게 이런 사실을 잘 알 수 있게 교육해야 되는 임무는 식물원의 새로운 역할이다”고 덧붙였다.

◇식물원 담장 밖으로… 미래시민 양성부터 지역사회 상생까지

최근 식물원에게 새로 요구되는 기능 중 하나는 바로 교육이다. 식물을 매개로 인간 생존에 절대적인 환경 보존에 대해 교육하면서 자연에 대한 태도는 물론 삶의 양식까지 바꾸도록 나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일찍이 정원문화가 발달한 미국과 영국의 식물원에서는 일반 시민부터 전문 원예사 양성까지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브라이언 설리번 뉴욕식물원 부원장은 “식물원으로서 우리가 할 일은 현지 사람들에게 교육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식물이 없으면 인간도 있을 수 없는 만큼 사람과 자연을 연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 해야 한다”고 특히 강조했다.

1919년 전문원예학교 문을 연 뉴욕식물원은 500개 이상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특히 ‘어린이정원(어드벤처 정원)’ 운영에 정성을 쏟고 있다. 어릴 적부터 식물을 가까이 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어린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는 것은 최근 전세계 식물원의 추세다. 뉴욕식물원은 주말마다 어린이들이 직접 정원을 일구거나 자연에서 나는 열매로 미술품을 만드는 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40여개 자연체험공간을 조성해 온 가족이 즐길 수 있게 했다.

아시아 식물원으론 최초로 어린이정원을 조성한 곳은 싱가포르식물원이다. 영국 식민지였던 19세기 문을 연 곳이다. 정원 체험부터 관찰ㆍ탐험ㆍ세미나 등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 지식과 감수성을 지닌 미래세대 양성을 위해 힘을 쏟는다.

식물원의 역할은 식물원 담장 밖으로 확대되고 있다. 식물원 주변 지역 사회와의 상생 발전이 그것이다. 지역재생의 성공사례로도 꼽히는 에덴 프로젝트의 경우 직원 425명을 모두 지역민으로 고용했다. 식물원이 구매하는 모든 물품의 80%는 현지에서 이뤄진다. 토양도 외부에서 들이지 않고, 폐광산의 점토를 퇴비와 혼합해 쓴다. 그렇게 8만3,000톤에 이르는 토양을 만들어 사용했다. 이렇게 지역사회와 긴밀하게 관계 맺기에 성공한 에덴 프로젝트는 지역민의 자긍심과 여가ㆍ문화 수준을 높이는 데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김용하 한국수목관리원 이사장은 “21세기 식물원은 전통적 역할인 식물 자원의 보존뿐 아니라 사람과 자연을 연결해주는 장소로 역할해야 한다”며 “인류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면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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