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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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아르헨티나에서 ①

2019-10-07 (월) 문주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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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부에노스 아이레스 법대 건물 앞에 서 있다. 마침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한 무리의 젊은 학생들. 그들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저들이 나중에 이 나라의 검사가 되고 변호사가 될 사람들이다. 운이 좋으면 장관도 나오고 국회의원도 나오고, 어쩌면 이 나라 국민들을 책임질 대통령이 나올지도 모른다.

곧 치러질 대통령 선거 후보들. 우파 마크리와 피체토, 그리고 좌파 페르난데스와 크리스티나(CFK). 이 중에서 3명이 정의롭게 살라고 배웠을 법대 출신들이다. 더욱이 좌파 페르난데스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법대의 형법 교수. 부에노스 아이레스 법대 건물 앞에서 나는 기도를 한다.

이곳에 와보니, 우리 한인들도 대부분 좌파가 이길 것으로 예상하는 것 같다. 그러나 CFK의 진짜 속마음을 누가 알까? 자기 딸을 지킬 것인지, 자신의 정치 신념을 지킬 것인지, 아니면 둘 다 지켜낼지. 10월 27일 대선을 앞두고 아르헨티나의 앞날은 정말 안개속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우리 동포들조차,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뉘었다.


홍콩영화 첩혈쌍웅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킬러 주윤발과 형사 이수현이 서로 권총을 겨눈다. 서로 총을 내려놓으라고 하면서도, 자기 총은 절대로 내려놓지 않는다. 바로 그때, 카페에서 노래 부르는 불쌍한 여주인공 제니가 들어온다. 그러나 그녀는 눈이 멀어서 앞을 볼 수 없는 처지. 눈이 없으니 그들이 그렇게 권총을 맞대고 있는 것도 볼 수 없다. 그저 두 주인공들 사이에서 순진하게 웃기만 하는 제니를 보면서, 나는 이 나라의 불행한 국민들이 떠올랐다.

내가 아르헨티나에 온 이유는 여행 반, 업무 반. 이 나라 은행들이 60%의 이자를 준다는데,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미국은 기껏해야 2%. 물가와 세금 따지면 손해다. 돈 갈 데가 없다. 고객들이 자꾸 묻는다. ‘문 선생, 어디 돈 투자할 데 좀 알아봐줘.’ 그러니 진짜로 은행 이자를 60%나 주는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여기에 왔다.

거기다 미국에 오고 싶어 하는 아르헨티나 한인 동포들의 전화 상담을 몇 번 받았었다. 그 손님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고, ‘이러다 아르헨티나 꼴 난다’는 걱정이 무슨 뜻인지도 알아보고 싶었다. 이곳 현지의 회계사, 변호사, 그리고 은행가들과 부동산 회사 사람들을 만났다.

어제 저녁에는 2년 만에 환율이 3배 반이 뛴 나라에서 꿋꿋하게 버텨내고 있는 한인 사업가의 집에 초대받아, 멘델스존의 무언가(songs without words)를 들었다. 오늘은 하늘에서 땅에서 그리고 물에서 이구아수 폭포(iguazu falls)를 봤다. 그러나 멘델스존의 곡도, 폭포의 물줄기도, 우리 인간들의 욕심을 당분간은 멈출 수 없을 듯하다.

<문주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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