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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2019-09-16 (월) 문주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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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우리는 살겠다는 의지가 불러온 기적의 구조현장을 목격했다. 골든레이(golden ray)호 얘기다. 4,000대의 자동차를 실은 200미터 길이의 한국 배가 미국 바다에서 90도로 쓰러졌다. 대부분 탈출에 성공했지만, 맨 밑 기관실에는 한국 선원 4명이 갇혀있었다.

그런 채로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그렇게 41시간을 버텼고, 마침내 구출되어 세상의 빛을 봤다. 마지막에 올라 온 선원이 손을 흔드는 감격스러운 모습. 구조대 팀장은 인터뷰에서 “그들은 인간이 처한 상상 가능한 최악의 상태에 있었다.”고 전했다. 바닷물이 가슴까지 찼고 150도의 뜨거운 열기가 좁은 공간을 뒤덮었다. 그러나 한국 청년의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선원들은 밤새 선체 벽면을 두드리며 생존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우리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밖에 알려야 했다.” 그런 절박함이 기적을 불렀다. 구조작업 책임자의 말은 더 인상적이다. “우리가 밖에서 밤새워 선체를 두드린 것은 우리가 당신 곁을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는 응답이었다.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려야 했다.”


그렇다. 이 세상의 누구도 혼자인 채 남겨져서는 안 된다. 어떤 사회와 어떤 국가도 그 구성원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거의 없다. 서울 송파구의 어느 해 추운 2월, 세 모녀가 번개탄을 피워 동반 자살했다. 유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들은 머리맡에 70만원이 든 봉투를 남겼다.

그리고 바로 한 달 전에는 봉천동의 어느 모자가 죽은 지 두 달 만에 발견되었는데, 먹지 못해서 그랬단다. 통장 잔고는 0원이었고, 그 집에 남은 것이라고는 봉지에 든 고춧가루가 전부였다고 한다. 당사자가 아닌데 누가 그 고통의 전부를 알겠나. 그래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포기하는 순간 기적의 힘은 사라진다. 내가 살아있다고 계속 두드리면, 저편에서 두드림의 기적이 반드시 찾아온다. 살고 싶음을 소리치지 않으면 기적의 손길은 그냥 지나친다.

이민사회에서 회계사만큼 개인들의 사업이나 집안일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 없다. 남들에게는 쉬쉬해도 회계사에게는 모든 것을 터놓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성직자도 공무원도 더욱이 정치인도 아니지만, 이민사회의 회계사는 고객들의 두드림에 즉답을 해줘야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여야 한다. 그래서 제안한다.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데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래서 속상하고 답답하다면, 내게 연락을 주기 바란다. 상담 전문가는 아니지만,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는 있으니 말이다. 추석이 지났으니 곧 찬바람이 불 것이다. 경제적으로 가장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 닥쳐오고 있다.

<문주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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