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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신념 표명하면 무조건 동성애 혐오인가”

2019-07-31 (수)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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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기업 ‘칙필레’ 논란...성경적 결혼관 공개 지지, 공항·캠퍼스 등 입점 좌절

▶ “당연” “종교자유 침해”...수년째 출구없는 논란만

“종교적 신념 표명하면 무조건 동성애 혐오인가”

동성애 혐오 논란에 휩싸인 패스트푸드 체인 ‘칙필레’ 매장 앞에 설치된 로데오 놀이기구에 한 직원이 모형 말에 올라탄 채 손을 들고 있다. [AP]

동성애 문제에 대해 특정한 종교적 신념을 표명한 한 업체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바로 치킨버거로 유명한 패스트푸드 업체 ‘칙필레(Chick-Fil-A)’다. ‘종교의 자유를 침범한 차별이자 위법’이란 주장과 ‘동성애 혐오 범죄’란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며 수년째 출구 없는 늪에 빠져 있는 논란의 핵심을 짚어본다.

‘칙필레’ 사태란?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기업인 칙필레(Chick-Fil-A)는 올해 상반기에 뉴욕의 버펄로 나이아가라 국제공항과 텍사스 샌안토니오 국제공항 입점이 줄줄이 좌절됐다. 이미 전국 28개 공항에 입점해 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나이아가라 프론티어 교통공사(NFTA)와 샌안토니오 시의회가 성경적 가치관에 따른 칙필레의 경영 철학을 문제 삼으며 동성애 혐오 기업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텍사스의 트리니티 대학은 기독교 계열임에도 학생들이 칙필레의 캠퍼스 입점 반대를 요구해 대학 당국과 갈등을 빚었다. 반면 뉴저지의 라이더 대학은 학생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칙필레의 반동성애 성향을 이유로 캠퍼스 입점을 취소했다. 펜실베니아의 듀케인 대학과 캘리포니아의 폴리텍 주립대학도 동성애 학생들에게 큰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칙필레 입점을 반대해 논란이 됐다.

칙필레의 창업주 트루엣 캐시는 남침례교단 신자로 51년간 주일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다 2014년 작고했다. 1946년 창업 이래 성경적 가르침에 따른 경영 원칙을 따르며 주일 휴무 방침을 고수해왔다.

경영권을 승계한 창업주의 아들이 2012년 성경적인 결혼관을 지지한다며 사실상 동성애 반대 입장을 밝힌 것과 그간 반동성애 기독교 단체 등에 거액을 기부해온 사실도 논란의 도화선이 됐다.

정작 칙필레는 8만여명의 직원들이 전국 2,300여개 매장에서 모든 고객을 차별 없이 포용하며 섬기고 있고 기부도 노숙자 및 저소득층 청소년의 교육 지원 및 지역사회 살리기를 위한 것이지 정치, 사회적인 이슈와는 무관하다며 시끄러운 여론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동성애 혐오범죄인가?

동성애 옹호자들은 칙필레의 경영 철학 때문에 동성애자들이 공항과 식당 등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혐오범죄 피해를 입힌다며 칙필레의 입점 반대 결정이 타당하다고 외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민주당의 비판이 거세다. 낸시 펠로시 연방하원의장은 칙필레 매장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혐오범죄로 처벌하고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리면 가중 처벌하는 법안(CFAHATE Act Of 2018) 상정을 지난해 실제로 추진했다.


친 동성애 진영에서는 성경적 결혼관을 지지하는 창업주 가족의 가치관이 곧 동성애를 혐오하는 증오범죄와 다름없다며 수년째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동성애 혐오 논란과 더불어 동물애호단체까지 가세해 칙플레의 인기메뉴인 치킨버거까지 문제 삼고 있다.

수많은 논란 속에도 칙플레의 미담은 여전하다. 매장에서 노숙자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매니저의 사진이 소셜 미디어를 뜨겁게 달궜고 드라이브스루를 이용하던 고객의 차량 뒤에서 호흡 곤란을 일으킨 6세 소년을 극적으로 살린 직원도 있다. 주일 휴무 방침에도 불구하고 토네이도가 휩쓸고 간 피해지역에서는 직원들이 자진 출근해 봉사자들을 위한 음식도 무료 배급했다.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고 매장을 찾는 모든 고객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라는 기업의 사명을 실천한 것이다.

종교 자유법 위반인가?

칙필레 사태는 특정 종교에 대한 적대감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자 특히 반기독교적인 차별행위라는 비판이 맞서고 있다. 칙필레가 기독교 기업이란 이유로 정부 계약 등에서 배제된다면 교회에 헌금하는 기독교인이나 상인들도 모두 같은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와 마찬가지라는 것.

연방항공청(FAA)도 뉴욕 버펄로 나이아가라 국제공항을 대상으로 종교 자유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FAA의 기금을 지원 받는 공항에서 이 같은 차별행위가 금지되기 때문이다.

샌안토니오 시의회도 텍사스 주 검찰청과 연방정부로부터 차별 여부를 조사받고 있다. 6월 치러진 시장 선거 2차 투표에서는 연임을 노리는 현 시장과 칙필레를 옹호하는 시의원 출신 시장직 도전 후보의 날선 공방이 펼쳐졌다. 도전 후보가 이번 논란이 샌안토니오의 수치라고 하자 현 시장은 미래를 보는 안목이 부족한 후보라며 종교 자유법 보장은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고 쏘아붙였다.

텍사스 주의회에 이어 주지사까지 나서 특정 종교 소속, 제휴, 가맹, 기부 등을 이유로 정부 계약, 하청, 면허, 등록, 인가, 고용, 융자 등에서 기업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못하게 하는 이른바 ‘칙필레 살리기 법안(Save Chick-fil-A Bill)’에 최근 서명하며 종교적 기업 보호에 적극 나섰다.

일부에서는 칙필레가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지 않았고 그저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지킨 것뿐인데 정치권에서 논란을 키워 오히려 기업 홍보를 도운 꼴이 됐다고 비꼬기도 한다.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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