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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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빗소리

2019-07-03 (수) 이재남/ 맨하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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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문예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오더라도 한 닷새 오면 좋지. 여드레 스무살에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 김소월 왕십리-
어제 저녁에는 비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비가 오지 않았다.

저녁 5시 뉴스에선 밤 8시부터 비가 올거고 밤 3시부터는 아주 많이 올 거라고 했다. 그제 온종일 내린 비도 모자라 홍수경보까지 내렸는데도 나는 비를 기다리고 있으니, 남의 사정엔 이렇게 상관없을 수 있는 건지.

그제는 온종일 비가 내렸어도, 많이 온다는 예보와 달리 살살 내리니 비가 왔다는 실감도 나질 않았고, 어제는 하루 종일 온다던 비가 거의 오지를 않았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왜 온다던 비가 안오나 하는 생각만 든다. 올 때가 됐는데, 하면서. 3시인데도 비는 오지 않았고, 잠은 들었다가 다시 깨고…


5시가 넘어 비가 유리창을 큰 소리로 두드린다. 두드렸다간 쉬고, 다시 두드리고. 바람에 흩날리듯, 흩뿌리듯. 그러다가 또렷하게 또 두드리고…
바람에 따라 비 소리도 이렇게 저렇게 변하며 유리창을 때리기도한다. 눈을 감으니 갑자기 포근하고 맘이 따뜻해진다.

온몸의 신경을 다 모아 빗소리를 즐기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온다던 비가 오니 마음이 편안해져서 잠 속으로 들어갔나 보다.

비를 추적하며 기다린 시간. 정말 이상도 해라. 왜 그리 날씨를 정확히 체크하려고 야단이람. 내가 기상청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날씨따라 어디가야 할 일도 없는데. 홍수가 나지 않은 건 다행이고, 나는 밤 빗소리를 감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오늘도 하루 종일 비가 소리없이 잘만 내린다.
빗소리도 없이……

<이재남/ 맨하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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