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라호마주 클레어모어 크리스찬스쿨 학생들과 함께 평화기도를 올리는 나티통 스님.
남가주의 태평양 연안 산타모니카에서 대서양 연안 세계최대도시 뉴욕까지, 미 남서부에서 동북부까지 1만2천리(약 3천마일) 넘는 먼 길을, 웬만한 사람은 자동차 여행조차 엄두를 내기 힘든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수행자가 있다.
태국 출신 수탐 나티통(Sutham Nateetong, 57) 스님이다.
이제야 시작이 아니다. 거의 다 걸었다. 지난 3월 1일 산타모니카를 출발한 스님은 때로는 비바람을 헤치고 때로는 따가운 햇볕 속에서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사막을 헤치고 평원을 지나고 붐비는 도심을 걷고 인적 드문 오지를 거치면서 벌써 뉴욕을 목전에 뒀다.
깡마른 50대 후반에다 영어도 서툰 나티통 스님이 미국 횡단 만행(萬行)에 나선 이유는 평화를 위해서다. “평화를 위해 걷습니다. 전쟁 많고 폭탄 많고 살육 많은 이 세상이 평화롭기를, 이 세상 모두가 행복하기를 서원합니다.”
언론에 비친 스님의 형색은 영락없이 거지꼴이다. 남방계 스님들이 입는 짙은 황토색 승복은 구겨진데다 땀범벅 때범벅, 거기다 햇볕에 바싹 그을린 마른 얼굴 하며 걸망 대신 짊어진 배낭 하나, 발바닥이 덜 아프도록 신은 테니스화 또한 어딘지 부조화 그 자체다.
그러나 스님의 3천마일 만행은 괴롭지도 외롭지도 않은 것 같다. 스님의 안전 버팀목과 동선 알림이 역할을 겸해 시자 한명이 자동차로 따라가는 가운데 수백여 지지자들이 페이스북 등을 통해 응원을 펼치고 있고 스님이 지나는 주요 지점마다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스님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더러는 식사를 대접하거나 식사비 등을 보시하고, 더러는 사진촬영과 즉석상담을 한다. 지역언론의 취재는 단골메뉴다.
나티통 스님의 평화염원 미국 도보횡단
종교초월 경사도 있었다. 지난달 오클라호마주 클레어모어시를 지날 때는 그곳 크리스찬스쿨 학생들이 스님과 함께 길에서 평화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종교초월 노변 평화기도는 지역언론 클레어모어 프로그레스에 크게 실렸다. 이 매체에 따르면, 그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스님과 악수를 청하거나 함께 사진을 찍었다고 보도했다. 스님의 뜻에 공감하는 주민들이 잠자리를 제공하는 등 물심양면 후원이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스님은 하루 20-30마일 걷고 모텔에서 잤으나 사막을 지날 때는 텐트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성과는 또 있다. 스님 덕분에 불교 불모지나 다름없는 중부지역 유력지가 스님의 동정과 함께 불교란 어떤 종교이며 기본교리는 무엇인지 소개하기도 했다. 스님의 대장정은 평화 메시지뿐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까지 널리 알리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유서깊은 I-66 도로를 하루에 30마일씩 걸어 시카고를 통과한 스님은 이달 말까지 목적지 뉴욕에 당도, 1만2천여리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대학에서 법학과 행정학을 전공하고 50대 초반까지 변호사와 정치인으로 활동한 그는 5년 전 모든 것을 접고 스님이 됐다고 한다. 그는 클레어모어 프로그레스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인이었을 때 정말 열심히 했지만 내 나라는 아직 달라진 게 없다”며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말했다.
스님은 한국식으로 따져 법랍 5년에 불과하지만 태국은 물론 인도,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라오스, 일본에서도 ‘평화 만행’을 해왔다. 이번 북미대륙 횡단 대장정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내년에는 태국 방콕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7천5백마일 만행에 나설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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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