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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칼럼] 경계해야 될‘ 양옷 입은 이리'

2019-06-20 (목) 우남수 목사 / 행복연구원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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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얻는 유익함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듣거나 책으로 읽어서 피상적으로 알던 것들을 직접 가서 봄으로써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번 동남아 순방때도 선교적인 차원에서 몸소 보고 배운 것 외에도, 다른 면에서 뼈저리게 느꼈던 일들이 많이있다. 그중에 캄보디아에서 있었던 두가지 이야기를 나눌까 한다.

하나는 앙코르와크(거대한 대리석 구 사원의 유적지가 있어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곳)가 있는 시엡림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H 여선교사님이 경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다. 약 60명 정도 머물 수 있는 3층 건물로 맨 윗층은 예배실로 쓰고 있으며, 주일날은 예배를 드렸다. 길을 가다 ‘평양냉면’ 간판이 보여 물어봤더니 거기가 바로 북한사람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했다.

저녁 6시에는 식당 앞에 작은 무대가 설치되고 30분 정도 공연이 있어 식사 도중에 볼만하다고 했다.


식당을 차려놓고 엄격한 규제 하에 외화벌이를 한다는 얘기는 익숙해 있지만, 한번도 실제로 접할 기회는 없었기에 한번 가기로 결정하고 선교사의 인도로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은 큰 편이었고 한복으로 깔끔하게 단장한 여종업원들이 친절하게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영접해 자리에 앉혔다. 음식은 채식 중심의 단촐한 건강식에 물냉면 작은 덩어리가 후식처럼 나왔다. 절도있게 단련된 행동 하나하나가 친절했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자유분방망함이 없었다. 드디어 6시30분이 되자 자연스럽게 무대가 준비되고 악기 ,마이크장치, 조명 등이 순식간에 자리잡고, 노래와 춤공연이 시작되었다.

모든 종업원들이 최고 수준의 춤과 각종 노래, 악기를 다루는 연예인들이었다.

가곡들을 부르기도 했는데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을 부를 땐 나도 모르게 가슴 속에 울컥 울음이 솟구쳤다. 1950년대 6.25때 인민군들의 착취와 행패부리던 북한군들을 본 후 북한사람을 실제 대면으로는 처음 본 셈이다.

같은 핏줄, 같은 언어를 쓰는 한민족인데, 먼 이방인을 대하는 것같은 이질감은 어이된 일인가? 어렴풋이 북미회담때 보았던 저렇게 고생하며 번돈을 착취해 간다는 살찐 독재자 김정은의 얼굴이 스쳐가기도했다. 정치범수용소에서 핍박받는 5만여명의 기독교인들도 생각났다.

이날 손님들은 대부분 한국 관광객들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앞다투어 그들과 사진을 찍는 한국인의 마음은 어땠을까? H 여선교사님의 후담이 재미있었다.

그녀의 아들이 한국관광객 가이드가 되어 매일 수십명씩 모시고 ‘평양냉면’집에 드나들다 보니 여종업원과 눈이 맞아 서로 좋아졌다. 물론 그것은 그녀들에겐 절대 금기였다. 철저히 조사 후 사실이 확인되면 북한으로 송환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의 사랑이 뜨거워져 그것을 끊는데 혼났다고 했다. 사랑할 자유조차 없는 북한체제가 그들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결국 국경과 이념을 넘어 뜨거워졌던 사랑은 공산주의 벽에 부딪혀 깨지고 말았다고 했다.


그 다음, 지난번 선교여행 이야기 때도 잠깐 언급했던 크메르에 의한 공산혁명시 1~2년만에 구백만명이 학살되었던 킬링필드(Killing Field)와 고문하고 사살하던 학교를 기념박물관으로 만들었다. 그 이유는 전체 교실들이 고문과 학살의 장소로 쓰였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모양 그대로 학살도구, 침대들이 놓여져 있었다. 학살된 사람들과 사진이 벽에 붙어 있었다.

총으로 쏘아죽이다가 총알도 모자라 칼로 베어 죽이고 ,찔러죽이고,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아이들을 바위에 던져 죽이거나 굵은 가시나무에 찔러 죽이는 것이 하루에 수천명씩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묶어놓고 굶겨 죽였다. 이 끔찍한 살인을 공산주의 혁명과정의 일부라고 젊은 당원 청소년 남녀들이 서슴없이 그 일을 해냈다. 정말 공산주의 세뇌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만다행히도, 그 와중에 부인과 네 아이들을 잃고 구사일생으로 자동차 고치는 기술자를 찾는 스피커 소리를 듣고, 기술자로 살아남은 츔메이(Chum Mey) 할아버지가 자신의 자서전 ‘Survivor’를 팔며,박물관 입구에 앉아 있어, 살아있는 증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책을 구입한 후 자세히 읽으면서 이런 잔인한 비인도적인 역사가 결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불행히도 우리는 비슷한 공산주의 독재자 김정은을 이웃에 두고 있다. 미소짖던 평화의 사도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침략자로 탈바꿈해서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성경의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7:5)는 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남수 목사 / 행복연구원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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