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O, 게임중독 질병 분류, 중독 심할수록 뇌 해마 커져
▶ 감정조절·기억력 기능 감소, 중독센터 예방ㆍ치료 길 열려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함으로써 진단과 치료, 예방하는 길이 열리게 됐다.
“게임이 아니라 ‘게임사용장애(게임 중독·gaming disorder)’를 세계보건기구(WHO)가 ‘질병(질병코드 6C51)’으로 공식 규정했습니다.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고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지속하는 것을 질병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런데 마치 게임 자체를 금지하는 것처럼 비판하는 일부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중독은 임상적으로 금단(withdrawal)이나 내성(tolerance)을 포함해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시간을 많이 쓰거나, 폐해가 생겨도 이를 중단하지 못할 때를 말합니다. 운동이나 낚시 등도 심하게 하면 중독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대부분 임상적인 수준을 넘기지 않기에 의학적으로 중독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중독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들이 지난 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72차 WHO 총회 B위원회에서 게임 중독을 질병(질병코드 6C51)으로 분류하는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이 만장일치 통과된 것을 놓고 게임 업계가 극렬히 반대하는 데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번 WHO 분류로 194개 회원국들은 2022년부터 게임 중독 통계를 발표해야 하며 예방·치료 예산을 배정할 수 있게 됐다.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를 총괄하는 보건복지부는 WHO 개정안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KCD가 새로 개정되는 2026년부터 국내에 반영될 전망이다. 게임 중독인 사람은 전 세계 인구의 1~2%로 추정된다.
◇ “게임 중독은 확실한 질병”
게임 업계 등에서는 이번 WHO 분류를 “아직 충분한 연구와 데이터 등 과학적 근거가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리처드 우드 호주 시드니대 심리학과 교수팀은 2007년 4건의 게임 중독과 관련한 연구를 분석한 결과 게임 중독이 아니라 개인의 시간관리 능력 부족에 가깝다는 결론 등도 이를 뒷받침한다.
WHO의 이번 분류로 국내 게임 산업 위축이 우려된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은 향후 3년 동안 11조원이 넘는 경제적 손실을 볼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의학계에서는 이런 주장은 전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한다. 게임 중독 규제는 1981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제기됐다. 1978년 출시된 아케이드게임인 ‘스페이스인베이더’가 중독을 일으켜 일탈을 초래한다며 금지법안이 상정된 바 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후반 비디오게임 때문에 중독성 논란이 시작됐다.
의학계는 뇌가 예상치 못한 보상을 얻었을 때 쾌락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고 반복적으로 자극에 노출돼 더 큰 자극을 찾을 때 게임이나 도박 등에 중독된다고 보고 있다. 영국·미국·캐나다의 18~24세 1만8,932명을 대상으로 한 4개의 코호트 연구결과, 유병률이 0.3~1.0%에 불과하지만 게임 중독의 진단기준은 명확하다.
이에 따라 미국정신의학협회(APA)는 2013년 발표한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 제 5차 개정안(DSM-5)’에서 게임 중독을 장애요소로 처음 언급했다. APA는 ‘혼자나 다른 사람들과 게임을 하기 위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함에 따라 유의미한 임상적 손상이나 고통을 일으킬 때’를 ‘인터넷 게임 중독’으로 명시했다. 그러면서 12개월간 다음 9가지 항목 중 5개 이상의 증상이 생기면 질환이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아비브 와인스타인 이스라엘 아리엘대 행동과학과 교수는 2017년 ‘정신의학 개척자들(Frontiers in Psychiatry)’에 발표한 논문에서 인터넷 게임 중독과 관련한 76개 자기공명영상(MRI) 연구를 분석한 결과, 게임 중독이 되면 뇌의 구조·기능적 이상이 생긴다고 밝혔다.
미하라 사토코 일본 국립요코스카병원 의료중독센터 박사가 2017년 ‘정신의학 & 임상신경과학(Psychiatry and Clinical Neurosciences)’에 발표한 논문에서 게임 중독이 아시아 몇몇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영국 독일 스페인 등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보건문제라는 점을 확인했다. 게임 중독에 대한 36개 단면적 연구(현재 게임 중독 실태)와 13개 종방향 연구(몇 년간 추세 실태)를 검토한 결과에서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과도한 게임은 뇌에 작용해 중독적 사용을 유발할 수 있고 단순한 습관이 아닌 조절 기능을 떨어뜨려 중독 지속을 초래할 수 있어 다양한 건강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인지행동치료·동기강화로 치료 가능
게임 중독은 병원과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등을 통해 치료할 수 있다. 조근호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사업과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병원에서 개인·집단상담을 통해 생각의 오류를 바로잡는 ‘인지행동치료’와 게임 중독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닫도록 도와주는 ‘동기강화’ 등이 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WHO의 이번 조치에 따라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관리하기 위한 준비에 나섰다. 관계부처와 전문가, 관련 단체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논의하기로 했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WHO가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면 곧바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의료계 현장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는 시각이 많다. 한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관계자는 “서울 4곳 등 전국 50개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 근무하는 직원이 센터당 평균 4.1명, 연간 예산도 1억3,500만원에 불과하다”며 “그것도 주로 알코올 중독 치유를 돕는 일에 그쳐 게임 중독 치료 지원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과몰입힐링센터도 3개뿐이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스마트폰과의존종합대책에도 게임 중독 부분은 거의 없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은 현대 문화의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게임 중독이 존재하므로 산업적인 접근만 강조하기보다 게임 산업도 해치지 않으면서 중독 문제도 해결할 수 있도록 현명한 정부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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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익 의학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