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각장애 신학대 총장 탄생

2019-05-23 (목) 유정원 종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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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리로 분규 총신대 새 총장에 이재서 교수 만장일치 선출

▶ 비신학과 출신…“고통 당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귀 기울일 것”

시각장애 신학대 총장 탄생

총신대학교 새 총장으로 선출된 이재서 명예교수가 기자 간담회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

총장의 비리와 구속으로 어려움을 겪던 총신대학교 새 총장에 시각장애인 목사 이재서 명예교수가 내정됐다. 총신대는 전임 김영우 총장이 지난해 10월 배임중재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으며 법정 구속된 이후 신임 총장을 물색해 왔다.

총신대는 김 전 총장의 비리를 둘러싸고 학내 시위가 이어지는 등 안팎으로 내홍을 겪었다. 이번에 총장에 취임하는 이재서 교수에게 기대가 모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교수는 11명의 총장 후보 가운데 줄곧 1위를 달렸고 이사회 만장일치로 총장에 선출됐다.

시각장애인으로서 뿐만아니라 신학과 출신이 아닌 인물로서도 처음 총신대 총장이 됐다. 이 교수는 오는 25일 총신대 7대 총장에 취임할 예정이다. 이 교수는 2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기자 간담회에서 이 교수는 전임 총장이 부정 청탁을 위해 돈을 건넨 혐의로 구속되고 교내 갈등과 반목이 지속해 어수선한 학교를 정상화하는데 우선적으로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이 교수는 "총장은 꿈이 아니었지만, 주변 권유로 응모해 당선됐다"며 "국내 대학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시각장애인 총장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총장으로서 학교 경영뿐만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해소해야 할 막중한 책임도 느낀다고 털어놨다. 한국에도 헬렌 켈러 같은 훌륭한 장애인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는 희망도 밝혔다.

또 한국 교회에 대해 "언제부터인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그들의 눈물을 닦는 일을 소홀히 하는 듯하다"며 "초창기 선교사들이 어려운 사람을 도왔듯이 고통당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기회는 또 있고,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길이 보입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인내입니다." 기자들로부터 어떻게 시각장애를 이겨냈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어지간하면 혼자서 참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남 순천 황전면 출신인 이 교수는 빛도 지각하지 못하는 전맹 시각장애인이다. 시각장애는 그에게 극심한 고통을 남겼지만, 고향을 벗어나 공부할 기회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는 서울맹학교에 진학했고, 총신대를 거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사회복지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이후 1996년 모교인 총신대 신학과 교수가 됐고, 2002년 자신이 설치를 주도한 사회복지학과로 자리를 옮겨 지난 2월 정년퇴임을 할 때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총신대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예장합동) 교단이 설립한 신학대학이지만, 이 교수에게 적지 않은 시련을 줬다. 1977년 2월에는 학교 측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입학 원서 접수를 거부해 7시간 동안 기다렸고, 교수로 근무하면서도 다양한 차별을 당했다.


그는 장애인 차별의 원인으로 나쁜 품성이 아니라 무지를 꼽았다. 이 교수는 "총신대에 입학할 때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면 학교가 내리는 처분을 두말없이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런 시련을 겪지 않았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제가 총장이 됐을 때 저를 모르는 사람도 장애인이 경험하는 뚫리지 않는 벽을 대신 넘어선 듯한 대리만족을 한 것 같습니다. 장애인도 노력하면 총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꿈을 지켜야 합니다."

이 교수는 총신대 학생이던 1979년 장애인 선교단체인 한국밀알선교단(현 세계밀알연합)을 만들어 20여 개국에 선교단을 둔 기관으로 키워냈다.

<유정원 종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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