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면 매년 벽에 걸린 달력에 기억해야 될 날들을 동그라미 쳐놓고 메모해두는데 특히 5월에는 유난히 많다. 딸, 두 손자와 동생 생일, 큰 딸과 아들의 결혼 기념일이 모두 오월에 있다.
그런 중에도 첫 눈에 띄는 것은 ‘어머니 날’이다. 행여 잊지 않도록 붉은 사인 펜으로 큰 동그라미로 표해 놓았다.
5월의 문앞에 이르면 백화점에는 어머니날을 위한, 그날 하루라도 효자, 효녀가 될수 있는 비결이라도 알려 주는 양, 진열된 보석, 옷, 장신구, 운동복, 여행용 비품들이 눈길을 빼앗는다.
어머니는 예쁜 카드를 퍽이나 좋아하셨고 받으신 모든 카드를 나란히 줄 세워 놓으셨다. 오월이 지나 카드 세일 기간, 예뻐 보이는 것 4장을 골라샀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엄마’로만 생각하였기에… 한 해 한 해 받으시며 “고맙다”는 인사와 웃음 가득한 표정은 내 마음을 오랫동안 기쁘게 하였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엄마, 카드가 예뻐요? 그 안에 내용물이 좋으세요? 하니 “둘~다”라고 하셔서 크게 웃었다.
연세가 더 할 수록 간단한 지폐를 선호하셨는데 특별 이벤트에 받으신 그 지원금은 손자, 손녀들의 생일이나 축하 선물로 기쁘고 당당하게 주셔서 할머니 인기가 “짱”이었다. 각 카드 내용은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감사의 인사가 빽빽히 실려 있었으며 어린 아이들이 보낸 카드는 설명이 필요하였고, 오월이 다 가도록 가끔씩 펴 읽으시는 모습이 지난 날들을 회상하시는듯 잔잔한 미소로 답하셨다. 내가 집을 옮긴 후 서랍 정리를 하면서 하나 남아 있었던 어머니 날 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예쁜 카드 네개 중 하나가 수신인을 잃고 덩그라니… 책상위 사진속에서 미소로 나를 보신다. 옆에 계셨을 때는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도 못 했고, 핑계로 미루기도 한 일들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만 남아 자책하게 된다.
구십오년이란 긴 세월의 삶에 ‘파란 만장’이란 표현이 어울리기는 할까? 엄마가 힘들었을 시기에 “내 결혼 생활은 짧고 굵었다”고 하셨는데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살아 오신 엄마로구나, 부럽기도 하였고, 고비고비 험준한 그 많은 산을 넘어갈 수 있도록 지탱해준 두분의 신의(사랑)가 자랑스럽고 지금도 뭉클함이 솟는다.
엄마는 온전히 사남매의 “엄마”라는 무거운 타이틀로 이 세상을 사셨다. 삶의 방식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보고 배운다고 하는데 저희들 넷, 손자, 손녀들은 무언의 교육을 받았다. 우리 모두가 엄마를, 할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허리가 굽어 작아진 할머니의 어디에서 강한 리더십과 사랑이 넘치시는지 “어메이징 할머니”로 가족 모임에는 흉도 늘어 놓으면서 웃곤 한다.
남겨진 카드 손에 들고 사진속 엄마에게 기대어 본다. 금년 어머니 날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속 깊숙히 있던 사연을 담아 ‘못 드린 카드 한 장’을 마저 띄웠다. 받으시고 웃으실지 눈물 흘리실지 몰라도… 하늘 보다 높고 바다 보다 깊은 엄마 사랑, 은혜, 헌신, 감히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지만 엄마!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어요. 하나님의 품에서 허리 주~욱 펴시고 편히 쉬세요.
<
손인자 두란노 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