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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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슬픔에 젖어 ‘

2019-04-26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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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던 1970년대 초 막내삼촌은 월남 파병에서 돌아오는 귀국길에 포상휴가로 파리에 들렀다 왔다. 말로만 듣던 프랑스의 파리! “밥 안먹고 여기서 살래 해도 살겠더라. ” 일가친척이 파리가 어떠냐고 묻자 그 한마디를 했다. 넘쳐나는 문화의 품격과 향취로 밥을 안먹어도 배고픈 줄 모르게 한다는 그 파리의 상징 중 하나인 노트르담 성당에 불이 났다.

프랑스 고딕양식 건축의 대표작 노트르담 성당의 첨탑과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붉게 물든 거대한 장미창은 얼마나 참혹하게 아름다운지, 지금 파리 시민들은 슬픔에 젖어있다.

불타는 노트르담 성당 뉴스를 보면서 2008년 2월10일 불길에 휩싸인 숭례문이 떠올랐다. 시뻘건 불길이 2층을 활활 불태우고 잔해가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던 기억은 참담했다. 조선 태조 7년인 1398년, 한양 도성의 남쪽 대문으로 건축된 숭례문은 장마나 비가 안 올 때 임금이 제를 지내던 역사깊은 곳이다.


한국에서 살던 우리에게는 ‘남대문’이란 이름이 익숙한데 일제가 1934년 정한 보물1호가 남대문이라서 1996년 역사바로세우기 일환으로 남대문이 숭례문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지방으로 내려가거나 서울역에 내리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숭례문, 토지보상금에 불만을 품은 한 시민의 화풀이 대상으로 한국민은 물론 재외한인들까지 추억의 장소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이번 화재로 불탄 노트르담 성당 재건을 위해 파리의 대기업들이 앞장서 기금을 내고 있다. 구찌, 입센 로랑 등의 브랜드를 소유한 그룹 프랑수아 앙리 피노케링 회장이 1억유로 (약1,280억원), 루이뷔통 등을 소유한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2억유로(2,568억 원), 정유업체 토탈 1억유로, 로레알 화장품 기업 2억유로, 기타 은행과 보험회사, 시민들이 릴레이 기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구촌 전역에서도 소액모금이 이어져 이틀만에 8억유로(1조원) 이상이 모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거리 전체가 문화재인 이태리는 어떻게 예술품을 복원할까. 2000년 세월을 견뎌낸 로마 콜로세움이 인근 복잡한 교통량으로 내부균열이 일어나자 2012년 패션잡화 브랜드 토즈가 약 390억원 비용을 부담해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트레비 분수의 노후화가 심각해지자 패션업체 펜디가 31억원을 지원했고 피렌체 두오모 광장 문화재 보수는 마이클 코어스가 담당했다. 이들은 예술품 복원을 위한 후원금 내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여긴다.

그런데 2008년 숭례문 화재 당시 복원비용 조달방식을 놓고 당시 이명박 제17대 대통령당선인이 국민성금으로 숭례문 복원을 제안했다가 정부가 방화에 대한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한다며 여론의 폭풍을 맞았다.

문득, 숭례문 화재 당시 한국 재벌 기업들은 기금을 얼마나 내었던가가 궁금했다. 화재 5년만인 2013년 4월29일 복원 완료된 277억원 복구비용 중 남대문 바로 건너 신한은행 12억원, 포스코 2억, 기타 기탁금 및 지원금 31억, 서울시, 나머지 245억원은 국비로, 결국 대부분 국민의 세금으로 지었다.

우리의 숭례문이 노트르담 성당보다 못해서?, 세계적으로 덜 알려져서? 그래도 서울의 상징이고 자랑스런 민족 유산인데, 도대체 왜? 아마, 우리의 대기업들이 문화 풍토 조성에 관심이 없는 것이고, 이 일은 국가가 할 일, 내 일이 아니야 하고 스스로 마음에 줄을 그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노트르담 성당 화재를 계기로 이태리, 스페인, 중국 등 국보급 건축물 화재 방지 및 안전보전책이 논의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목조 무량수전, 해인사 팔만대장경 등등 천금보다 귀한 문화유산이 많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3세들에게 자신이 받은 특혜를 사회적 책임감으로 환원하는 문화지킴이 교육부터 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1971년 영화 ‘파리는 안개에 젖어’에 나오는 샹송 ‘La Maison sous Les Arbres (나무 아래 집)'이 흐르는 안개낀 파리의 모습, 굶어도 그곳에 살고 싶은 도시, 서울도 그렇게 되기 바란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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