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잔인한 달' 이라고 시인 T.S 엘리엇은 노래했다.
T.S 엘리엇이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다면 나는 “연분홍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는 달”이라고 노래하고 싶다. -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
산지사방(散之四方)에 꽃 피는 봄 4월, 새싹 어여삐 돋는 4월, 그 찬란하고 경이로운 4월은 만우절 (萬愚節)로부터 시작된다.
4월 1일은 만우절이다. 글자그대로 해석하면 ‘어리석은 날’이 아닌가? 우리는 그 어리석은 날을 ‘거짓말 하는 날’로 정하고 있다. 중학교 다닐 때였다. 만우절인데 누군가를 속이지 않으면 재미없는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지금은 수녀님이 된 친구와 거짓편지로 담임선생님을 놀래 켰던 기억이 있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4월 1일 단 하루만할까? 아니다. 사람들은 날마다 거짓말이다. 날마다 속인다. 친하다면서, 고향이 같다면서, 같은 학교 졸업했다면서, 이리저리 연결하고 온갖 수로 속이고 속여 있는 대로 갈취한다. 그 다음 감쪽같이 잠적한다. 죽도록 사랑한다니까 정말 죽도록 사랑하는 줄 알고, 마음 주고, 몸을 주었더니 몰래 사진 찍어 구경거리로 삼아 치욕을 안겨준다.
거짓투성이, 가짜뉴스 천지다. 그리고 놀란 척, 우는 척, 모른 척 한다. 허언증이 돋보이는 세상이다. 날마다 만우절이다.
요즘 한참 뜨는 ‘스페인 순례길’이란 경건해야 하는 길 위에서도 가짜는 있단다. 아들 딸 이름 쓰고, 낙서하고, 소주판 벌리고, 쓰레기 버리고, 무슨 배짱인지 가관이란다.
하도 많은 거짓뉴스를 보아서일까? “사랑한다.”더니 소식 없다며 가슴아파하는 친구에게 “사랑을 믿느냐?”고 핀잔을 했다. 세상은 결코 속임수만 있는 게 아닌데…
그해 겨울 서울은 너무 추웠다. 우리는 인사동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은 밤거리를 헤매다가 불빛 하나를 발견했다. ‘레테’의 ‘점숙’씨는 그렇게 알게 되었다. 망각의 강 ‘레테’의 인연은 망각은커녕 수십 년이 넘었어도 생생한 기억들 뿐이다. ‘점숙’씨는 ‘춘향가’ 중에 춘향이 부른 노래 ‘갈까부다’를 얼마나 처절하게 부르던지, 그 후로는 어느 대단한 국악인도 ‘점숙’씨의 ‘갈까부다’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점숙’씨는 나보다 나를 더 염려했다.
미국에 온 수년 후 서울의 ‘점숙’씨를 찾았다. 양수리에서 카페를 한다고 전해 들었다. 큰 길에서 작은 길로 접어드는 길가 ‘점숙’씨의 카페, 카페의 문은 열려 있는데 아무도 없다. 같이 간 친구가 기다려보자 한다. 본래 이 카페는 ‘점숙’씨가 없단다. 지나가다 “점숙이 카페다”라고 들어가서 자신이 커피를 끓여먹고 돈을 놓고 가는 곳이라 했다. 비를 피하거나 쉬었다만 가도 되는 카페라 했다. 두 다리 뻗고 앉아 쉬어가는 무인(無人)카페, “누구나 와서 쉬셔도 좋고, 그냥 가셔도 좋다”고 말한 어느 시가 생각났다.
거짓과 의심과 배신의 세상에서 멋지고 아름다운 ‘점숙’씨 카페, 앞 뒤 뜰에 풀꽃 만발했다.
꽃피는 봄 4월 ‘점숙’씨가 보고 싶다.
- 사람은 진실보다./ 더 많은/ 거짓을 말한다./ 거짓은 듣기에 좋고/ 진실은/ 듣기에 거스르는데/ 꽃아/ 너는 진실임에도/ 듣고 보기에 좋은 까닭이 무엇이랴. - 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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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자/펜클럽 미동부지회 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