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리 신드롬

2019-04-24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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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중에 ‘스카이 캐슬’이 있다. 줄거리는 영재인 어린 딸이 교통사고로 지능이 저하되자 어머니가 아이를 시골에 놔두고 입시 코디로 변신해 자기가 이루지 못한 욕망을 온갖 사교육을 통해 자식을 대한민국 최고인 서울대 합격에 총 매진하는 부모들의 욕망을 노리고 이들을 서서히 파괴시킨다는 내용이다.

부모들의 이러한 심리를 이용한 현상은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명문 하버드나 스탠포드, 예일 같은 명문대 입학이 갈수록 어려워지다 보니 부유층 학부모들이 명문대 입학에 올인하면서 미국판 스카이 캐슬까지 생겨나고 있다. 바로 미국사회를 경악시키고 학부모들을 분노케 한 명문대학 사상 초대형 입시비리 사건이다.

일명 ‘SAT의 마법사’라 불리는 하버드 출신 교육컨설팅 업체 대표가 부유층이나 유명연예인 자녀들의 명문대 입학을 위해 거액의 뒷돈을 받거나 입학시험을 대리로 치러주다 적발된 사건이다. 그가 지난 13일 보스턴 연방지법에서 열린 재판에서 일부 혐의를 인정키로 해 약 20년형까지 처해질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를 통해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이나 졸업생들이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될 처지에 놓였다고 한다. 명문대에만 들어가면 된다는 학부모들의 잘못된 심리가 결국 철퇴를 맞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능력도 안 되는 학생들이 부당한 방법으로 입학한 결과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가기 어려운 경쟁적인 학업생활에서 심적인 고통이 극심할 것은 자명하다.

지난 2005년도 파문을 일으킨 한 한인박사의 박사학위 논문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20년간 미 명문대에 재학중이던 한인학생들 1,400명을 조사한 결과 끝까지 학업을 끝낸 학생은 56% 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중도에 탈락했다.

실제로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들 중에는 적응하지 못해 자살하는 학생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하버드대에서는 물론, 코넬대 경우 지난 2009년도에서 1년동안 6명, 뉴욕대학에서도 2003년도부터 1년간 5명이 자살했다는 통계가 있다. 이를 막기 위해 학교당국이 교내 다리위에 철조망을 치고 자살방지 팻말까지 세워놓고 있을 정도다. MIT도 자살학생 수가 10만명당 20.6명으로 알려지면서 자살대학이란 꼬리표까지 붙어 있다. 이런 결과는 학업경쟁과 부모들의 도가 넘는 집착이나 기대심리, 학생 본인의 자신감 상실 등이 큰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경쟁적인 학업으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아등바등하지만 그런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명문대생들의 모습을 빗대 나온 신조어로, 이른 바 ‘오리 신드롬(Duck Syndrome)’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은 고교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캘리포니아의 명문 트로이 고교에 다니던 10대 한인 여학생이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이 학생의 경우도 지나친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 등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 선풍을 일으킨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있다. 학생 대부분이 명문대학 진학을 꿈꾸는 사립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육환경을 다룬 내용이다. 이 학교에 부임해온 영어교사 존 키팅이 잘못된 틀을 깨고 살아야 한다는 취지로 서클 ‘죽은 시인의 사회’를 만들어 학교 분위기와 학생들의 사고를 자유롭게 변화시킨다는 줄거리의 영화이다.

키팅은 삶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교육을 두고 ‘죽은 시인의 사회’라고 표현했다. 시인들이 죽어있지 않은 교육, 즉 자기 개성을 살리고 인간고유의 특성을 잃지 않는 교육이 진정한 교육이라는 것이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수면 밑에서는 허우적거리는 불쌍한 오리가 되는 일이 없도록 명문이라는 이름에 무조건 목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그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불행이다. 올해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했다고 꼭 실망하거나 좌절할 일이 아니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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