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누라와 영감

2019-04-23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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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지인에게 뜻밖의 부탁을 했다. ‘마누라!’란 호칭에 관한 칼럼을 쓸 수 있냐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리, 마누라’란 표현을 즐겨 쓰는데 간혹 아내를 낮춘다는 지적을 받기 때문이란다. 자신은 중년을 넘어 허물없이 아내를 부르는 것이고 예전에는 극존칭이었기에 절대 아내를 낮추는 표현이 아님을 알려 달라는 이야기였다.
이번 주 칼럼 제목이 ‘마누라와 영감’인 이유다.

옛날에는 아내가 남편을 ‘서방님, 낭군, 나리’로 불렀다. 남편은 아내를 ‘각시, 마님, 부인’이라고 했다. ‘자네, 임자’는 부부가 함께 쓰던 말이다. 이외에도 남편과 아내를 ‘그이, 집주인, 신랑, 아기 아빠’. ‘내자, 집사람, 아기 엄마’ 등으로 각자 부르곤 했다.

‘여보, 당신, 여편네, 마누라, 영감…’ 등등. 아직도 이런 부부사이의 호칭은 웬지 어색해 보인다. 구식인 것처럼 표현되기도 한다. 호칭의 좋은 의미를 알고나면 그렇지 않다. 부부가 인생의 가장 소중한 동반자란 의미가 그 호칭속에 담겨있는 셈이다.


요즘 젊은부부들은 ‘여보’, ‘당신’이란 호칭을 즐겨쓴다.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여보’(如寶)는 한자로 같을 여(如), 보배 보(寶)이다. 의미는 ‘보배와 같이 소중한 사람’이란 뜻이다. 여보가 ‘여기를 보오’의 준말이란 설도 있다. 여자가 남자를 부를 때는 ‘당신(當身)’이라고 많이 한다. 한자로는 마땅할 (當), 몸 신(身)이다. ‘내 몸과 같다.’는 뜻이다. 내 삶의 전부일만큼 소중한 존재하는 의미다. 이처럼 여보와 당신이란 호칭은 내 몸과 같고, 내 삶의 전부라는 소중한 존재란 의미를 담고 있는 셈이다.

‘여편네’는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고리타분한 호칭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여편네는 한자어다. 여편에다가 ‘집단’을 뜻하는 접미사 ‘-네’를 붙인 것이다. 남편의 ‘옆’에 있어서 ‘여편네’라는 말이다. ‘옆편네’가 ‘여편네’가 된 셈이다. 이런 여편네는 결고 아내를 낮추어 부르는 호칭이 아니다. 남편의 옆을 지키는 아내를 부르는 말로써 항상 옆 자리를 지켜주는 ‘동반자’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마누라’와 ‘영감’이란 호칭은 원래의 의미와 달리 허물없이 쓰이는 말로 변하다보니 낮춤말이란 오해(?)를 사고 있는 표현이다.

‘마누라’는 ‘마노라’가 변한 말이다. 아랫사람이 상전을 부르는 칭호다. 임금이나 왕후에 대한 가장 높이는 극존칭어로 사용됐다. 조선말기 대원군도 며느리인 명성왕후를 깍듯하게 ‘마노라’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도무지 맞지 않는 호칭이다.
지금은 중년이 넘은 아내를 허물없이 부르는 호칭으로 변했다. 남편이 자신보다 연령이나 지위가 높은 다른 사람에게 아내를 지칭할 때 도 마누라라고 한다. 또는 아내를 ‘여보, 마누라!라고 부를 때 많이 쓴다. 그뿐 아니다. ‘주인 마누라’ 처럼 다른 사람의 아내를 낮추어 지칭할 때 쓰이기도 한다.

‘영감’ 역시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종2품, 정3품 당산관의 품계를 가진 관리를 높여 부르던 말이었다. 영감보다 높은 관직은 ‘대감’, 그 위에는 국왕의 존칭인 ‘상감’이 있었다.
지금도 법조계의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을 보면 ‘영감님’이라고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오늘날에는 나이든 부부사이에서 아내가 그 남편을 이르거나 부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언제부턴가는 ‘영감’이란 말이 나이든 남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의미로 바뀌고 말았다.

부부사이는 호칭을 보면 친밀도를 알 수 있다. 부부의 호칭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다. 어떤 부부든 서로 호칭만 잘 사용해도 관계가 좋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시대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중요하다. ‘마누라’와 ‘영감’의 원래 뜻이 아무리 좋다고해도 지금은 시대에 적합한 표현은 아니다. 그러니 가능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는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부부호칭을 떠올리며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동반자의 의미를 생각하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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