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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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지 않는 한 점 소묘

2019-04-10 (수) 고치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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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문예

목 좋은 곳은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한 발 물러 선 곳인 들
기구한 삶 보다 더 복잡한 잡화가게 벌려 놓았다
고맙게 드나드는 손님들 철 따라 계절 입혀 드렸고
남에게 뒤질세라 문화와 예술을 몹시 사랑하는 이들에게
내막이야 어떻든 겉 모습 유사한 유행 안겨주며
간당간당한 삶 볶으며 근근이 지탱했다
밸런타인 데이, 곰 인형에 초콜릿 안겨
이것 하나면 쓰디쓴 관계도 달콤으로 탱천 하리라 유혹했고
마더스 데이, 가짜 꽃에 사탕 몇 알 끼워
한없는 어머니 사랑에 오늘 하루 이나마 보답 되리라
체면 세우는 데 일조 했음, 스스로 위로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세상은 화려하게 번쩍거리며 저 만큼 앞서 가는데
안목 보다 소득이 따라가지 못해 조화에 마음 주고
기껏 초콜릿 몇 낱에 애정 쏟는
그들은 저소득층, 나는 그들의 처분만 바라는 더부살이였다
먼지 풀풀 날리는 시골 점방에 발목 잡힌 주인 집 딸처럼
간절한 눈빛으로 사 주기를 은근히 강요하며
참으로 유치하게 생의 한 철 흘러 보냈다
참으로 유치하게 생의 한 철을 흘러 보냈다
잠깐 조는 사이 흩어지는 봄날 아지랑이 같이 복사꽃 같이

<고치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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