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란 봄의 전령사

2019-04-09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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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개나리가 피었다.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서있다. 잘 자라고 꽃망울도 금새 피어낸다. 겨울에 그 많은 눈이 와도 나뭇가지 하나 꺾이지 않는다. 그저 의연한 모습으로 추위를 견뎌낸다. 그러다가 따스한 봄볕에 노란 꽃잎의 자태를 뽐낸다. 그 꽃을 보며 봄이 온 것을 실감한다. 개나리는 역시 봄을 알리는 전령사인가 보다!

개나리가 만발했다. 동네 곳곳에 홀로핀 개나리가 노란꽃으로 우리를 반긴다. 롱아일랜드를 지나는 495 고속도로를 오가다 보면 나뭇가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샛노란 꽃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있다. 홀로 피어도, 무리를 지어 피어나도 개나리는 아름답다. 무르익어가는 봄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꽃으로는 단연 으뜸인 셈이다.


개나리는 매우 흔한 봄 나무이다. 그러면서도 봄을 아름답게 하는 대표적인 나무다. 낮은 키로 무리지어 자라기에 생울타리로 심어 키우기에도 알맞춤이다. 그래서 우리 동네 몇몇 집 울타리는 개나리로 꾸며져 있다. 노랗게 피어나는 봄꽃은 인상적이라 누구나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봄나무가 바로 개나리다.

개나리는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식물이다. 노란 꽃을 피우는 갈잎 떨기나무다. 줄기는 여러 대가 모여 난다. 가지가 워낙 많이 갈라져 빽빽하게 자란다. 줄기 속은 비어 있다. 꽃은 이른 봄에 잎보다 먼저 핀다. 잎겨드랑이에 노란 꽃이 1-3개씩 달려 있다. 잎은 마주나고 긴 타원형으로 끝이 뾰족하다. 윗부분에 톱니가 있거나 밋밋하다. 앞뒤 모두 털이 없다. 앞면은 윤기가 나고 뒷면은 흰빛이 돈다.

개나리는 암수 딴 그루다. 하나의 암술과 두개의 수술이 있다. 얼핏 보기에는 똑같아 보인다. 꽃밥이 뭉쳐있는 수술 틈에 더 조그만 암술이 끼어 있는 꽃이 수꽃이다. 드물지만 암술이 발달되어 수술보다 높게 솟아난 꽃은 암꽃이다. 이처럼 개나리는 암꽃이 귀하다. 대부분 수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개나리는 수꽃의 꽃가루와 암꽃의 씨방이 만나 열매를 맺고 씨앗을 만들어 새로운 나무를 탄생시키기 힘들다. 그럼 개나리는 어떻게 종족을 늘려가는 것일까?

개나리는 가지를 꺾어서 화병에서 키우면 잘 자란다. 가지 하나만 꺾어서 양지바른 땅에 꽂아두어도 그리 어렵지 않게 자라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개나리는 꺾꽂이 형식의 번식이 워낙 쉽게 이루어진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수정을 해서 자손을 번식시킬 필요를 갖지 못한다. 계속 자기 복제품만을 만들고 있다. 자손을 늘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닮은 복제생명체를 늘려가는 방식인 셈이다. 그처럼 꺾꽂이로 번식을 하다 보니 암꽃의 절대 기능인 열매를 맺을 기회가 점차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래도 간혹 가을에 달걀 모양으로 여무는 열매는 끝이 뾰족하고 갈색으로 익는다.

그렇게 흔치 않은 개나리 열매는 옛날부터 귀중한 약재로 쓰였다고 한다. 한의학에서는 개나리 열매를 연교(連翹)라 한다. 가을에 익었을 때 채취해서 그늘에 말려서 사용한다. 표면이 녹갈색인데 거의 다 익었으나 열매가 벌어지지 않은 상태로 채취한 것을 청교라고 한다. 완전히 다 익어서 딱 벌어진 열매는 노교라 불린다. 종기의 고름을 빼고, 살충 및 이뇨작용을 하며 통증을 멎게 하는 효능이 탁월한 내복약으로 쓰였다고 한다. 또한 조선시대 임금에게 올리는 탕재로 처방할 정도로 귀한 약재였던 셈이다.

개나리의 학명은 포시티아 코레아나(Forsythia Koreana)다. 서양에서의 애칭은 골든벨(Golden Bell)이다. 이는 새봄에 피어나는 노란꽃이 마치 황금종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데서 착안한 이름이 아닌가 싶다. 꽃말은 ‘희망’이다. 어린 시절 개나리가 꽃을 피워내면 종달새가 ‘희망’을 노래했다.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봄은 오듯이 현재의 삶이 견디기 힘들지라도 희망은 기쁜 소식을 안고 달려오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

개나리는 노란 봄의 전령사다. 노란빛은 희망과 평화를 상징한다. 어느 누구에게나 마음의 안정을 준다. 노랗게 만발한 개나리가 아름다움을 주고 있다. 활짝 핀 개나리 꽃이 오가는 이들에게 희망도 선사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그런 계절을 살고 있는 것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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