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행복이라 여겼던 순간들을 돌이켜 보니 빛바랜 종이장처럼 초라해 보인다. 세상의 것을 추구하며 쌓아 올린 것들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반면에 상처 입고, 부서지며 통곡했던 시간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너무나 소소해 알아차리지 못하고 놓쳐 버린 행복들이 참으로 많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한 것들이다.
매년 봄 밭에다 씨나 모종을 심고 난 후에 비가 오면, 꼭 하느님께서 들여다 보고 계신 것 같은 기쁨에 전율을 느낀다.
추운 겨울날 산행에서 내려오면서 우연히 들른 식당의 따끈하고 맛있는 음식을 마주했을 때는 다시 한번 꼭 오고 싶어진다. 행복했던 그 순간을 다시 한번 만끽하고 싶어서다.
시골집에 잔디를 깎아주던 분이 여름내 연락도 없이 보이지를 않았다. 잔디는 낫으로 베어야 할 정도로 길었다.
어느 날 남편과 둘이 조금씩 잔디 가장자리를 베고 있는데, 옆집 아저씨가 잔디 깎는 분이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회복을 기다리는 중임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 즉시로 ‘몸이 안 좋으시다는 소식을 이제야 들었고 회복을 위해 기도해 드리겠다.’라는 짤막한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다음 주에 잔디를 깎아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과연 그가 와서 어마어마하게 길었던 잔디를 깔끔이 잘라 주었다. 참으로 기뻤다.
오래 전부터 성당에서 아이들로 인해 가까이 지내왔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 중에 한 명이 세상과 유명을 달리했다. 멀리 있어 장례식에 참석지 못했던 친구가 맨하탄에 사는 딸을 만나러 왔다.
겸사겸사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어해 약속을 잡았다. 고인과 가장 친했던 친구라 혹시나 묘지에 가보고 싶어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꽃 모종과 삽 그리고 물을 준비해 나갔다. 그날 모인 친구들은 고인의 묘지를 방문했고, 묘 둘레에 모종을 심어 놓고 왔다.
며칠 후가 어머니 날이었다. 고인의 딸이 묘지를 방문했을 때 꽃 모종이 심겨 있는 것을 보고 엄마 친구들이 찾아와 준 것에 대해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그 딸의 기쁨이 잔잔히 전해져 행복했다.
고인이 생전에 내게 베푼 사랑에 감사하며 나는 매일 기도와 미사 안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행복은 바닷가 모래알처럼 수없이 깔린 것 같다. 그저 인식하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가고 파도에 지워지기도 하지만, 오늘이 있어 새로운 행복을 지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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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선/ 뉴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