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인과 거짓

2019-04-02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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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기가 한 말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약속을 저버리기도 일쑤다. 거짓말을 예사로 하고 있다. 심지어 거짓말이 숨결로 배어 있을 지경이다. 참으로 거짓말이 판치는 세상이 아닌가 싶다.

거짓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실이 아닌 사실을 꾸며서 하는 말”이다. 흔히 거짓말은 인간의 끝없는 탐욕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거짓말의 시조가 이브에게 사과를 따 먹으라고 한 뱀이기 때문이다.

어제(4월1일)는 만우절이었다. 1년 중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해도 되는 날이다. 이날은 즐거움을 찾아 거짓을 말한다. 남을 웃기려고도 거짓말을 한다. 만우절 거짓말이 하얀거짓말로 불리는 이유다.


하얀거짓말은 착한거짓말이다. 선의의 거짓말도 하얀거짓말이다. 남을 위한 괜찮은 거짓말 역시 하얀거짓말이다. 오 헨리의 작품인 마지막 잎새. 그림으로 그려진 담쟁이 넝쿨의 마지막 잎새는 희망을 안겨준다. 그래서 하얀거짓말의 최고로 등장하고 있다.

탈무드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거짓말을 하얀거짓말이라 정의한다. 크리스마스 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간밤에 선물을 주기 위해 다녀 갔다고 아이의 흥을 돋우는 부모는 하얀거짓말쟁이들인 셈이다. 탈무드는 더 나아가 하얀거짓말을 권하고 있다. 이런 경우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미 누군가가 산 물건에 대해 의견을 물어왔을 때는 비록 그 것이 나쁘다고 해도 ‘훌륭한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라고 가르친다. 친구가 결혼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미모에 상관없이 무조건 ‘미인을 얻으셨네요, 행복하게 사세요!’라고 축하를 건네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결정된 상황에서는 ‘왜, 그랬어?’가 아닌 ‘참, 잘했다!’라고 하는 것이 좋음을 말함이다.

‘죽어도 시집 안 가겠다’는 노처녀. ‘얼른 죽어야지’라는 노인. ‘밑지고 판다’는 장사꾼. 이들의 뻔한 거짓말은 하얀거짓말을 아니다. 그렇다고 비양심적이라고 비난할 수도 없다. 물론,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속담처럼 거짓말의 동기는 미미하나 그 결과는 창대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어떤 거짓말이라도 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거짓말은 가벼움을 명분으로 내 세울 수 있다. 선을 명분으로 내세울 수도있다. 훌륭한 목적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거짓말은 목적을 위해 정당화될 수는 없는 법이다. 순수이성비판으로 잘 알려져 있는 칸트는 거짓말은 거짓말을 하는 본인의 인격을 침해하는 죄이자, 스스로의 존엄성을 상실하는 비천한 짓이다라고 주장했다. “비록 살인자 앞에서라도 친구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얀거짓말 역시 거짓말뿐임을 강조했다.

거짓말은 나쁘다. 거짓말은 나쁜 수단이나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저지르는 악행이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이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거짓말의 잘못에 대해 책을 통해 배운다. 이탈리아 피렌체 동화에 나오는 피노키오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 이 이야기들은 거짓말이 얼마나 무서운 것임을 잘 알려주고 있다. 그렇지만 누구나 살아오면서 거짓말을 해본 경험이 있다. 무엇보다 거짓말에 ‘새빨간’이란 형용사가 붙으면 그 잘못은 더욱 심각해 진다. 새빨간 거짓말은 남에게 어떤 해악이 가더라도 자기의 이익만 있으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사실처럼 꾸며서 말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에 대해 성경은 아주 엄중하고 경고하고 있다. 예수는 사탄을 가리켜 ‘살인한 자요’, ‘거짓말쟁이’, ‘모든 거짓의 아비’라고 표현했다. (요8:44). 이는 ‘살인’과 ‘거짓’을 동격으로 취급하는 가르침이다. 거짓의 심각성은 살인과 같은 격의 죄악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거짓말은 무섭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 외에 다른 죄도 쉽게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인과 거짓은 동급의 죄다. 모든 죄는 나쁘다. 나쁜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했다. 그러니 누구보다 새빨간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들은 꼭 가슴에 새겨야 할 교훈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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