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난절에 드리는 노래

2019-03-11 (월) 김영석/ 맨스필드대 성악.오페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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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serere mei, Deus (주여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는 1638년 이태리 신부였던 그레고리오 알레그리( Gregorio Allegri, 1582-1652)에 의해 작곡 되었는데 당시 그는 시스틴 성당의 합창단원이었다. 이 곡은 신비로운 분위기의 종교합창곡으로 너무나 아름답고 성스러워 현대에 와서는 영화 등의 예술분야에서도 종종 접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교황의 특명으로 바티칸 이외에서는 연주가 불허 되었고 악보가 유출되는 것조차 법으로 금지 되었다.

바티칸에서는 전통적으로 이 곡을 수난절 기간의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과 ‘성금요일(Good Friday)’ 예배 때 시스틴 성당에서 연주하는데 아마도 음악 역사상 무반주 합창곡으로 가장 유명하고 뛰어난 곡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곡의 가사는 시편 51편이며 다윗 대왕이 밧세바와 간음한 이후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속죄의 기도로 많은 작곡가들이 이 시에 곡을 붙였다.

‘Miserere mei, Deus(이하 미제레레)’가 연주 되는 시스틴성당에는 미켈란젤로의 천정화인 ‘천지창조’와 정면 제단의 벽화 ‘최후의 심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이 곡이 초연될 당시는 이미 이 그림들이 완성된 지(1536년 완성) 100년이 지난 후였다. 시스틴성당에서 이 곡을 듣는 사람들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답고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필자가 시스틴성당을 방문했을 땐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기다리다가 사람들이 다 입장한 후에 불을 켰는데 그때 빛 속에서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오던 짙푸른 빛은 참으로 놀랍고 신비스러운 경험으로 내게 남아있다.

알레그리의 ‘미제레레’는 워낙 유명한 곡이니만큼 특별한 이야기도 전해오는데 어린 시절 모차르트와 관련된 이야기도 유명한 일화이다.

모차르트의 가족간의 편지에 의하면 모차르트가 14세 때(1770년) 로마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시스틴성당의 Ash Wednesday 예배에서 부르는 이 곡을 듣고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다. 그 날 집에 돌아온 모차르트는 아까 들었던 ‘미제레레’를 기억하여 악보로 다 옮겨 적었다. 그리고 이틀 뒤 성금요일 예배에 다시 참석하여 그 곡을 다시 듣고 몇 군데를 수정하여 완성하였다. 그 이후 영국으로 연주 여행을 떠났을 때 그곳에서 당시 음악학자로 유명하던 Charles Burney에게 이 사본을 주었고, Charles Burney가 1771년에 이 곡을 출판함으로 유럽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교황청의 전유물이었던 ‘미제레레’가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의해 세상에 정식으로 공개되는 데 130여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셈이다.

당시 이 이야기를 들은 교황은 모차르트를 바티칸으로 불렀다. 그러나 모차르트를 만난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소년을 문책하는 대신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대한 찬사를 보내면서 황금 기사훈장을 수여 하였고, ‘미제레레’에 대한 복제 금지령을 해제 시켰다.

<김영석/ 맨스필드대 성악.오페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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