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을 떠난 사람에겐 고국은 어머니의 품과도 같다. 떠난 지 1, 2년이 된 사람이나 상업 차 자주 들리는 사람들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고 20년, 30년이 된 사람들에겐 고국은 남다르다. 고국을 떠나온 지 40년이 되간다. 뉴스로는 매일 보지만, 실제로 보는 고국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지난 2월4일부터 3월4일까지 17년 만에 고국을 찾게 됐다. 뉴스로 반영되는 고국의 풍경과 27일 동안 보고 듣고 걸었던 고국.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더듬어 본다. 제일 먼저 놀란 건 화장실이다. 그렇게 깨끗할 수가 없다. 특히 전철역 화장실. 그것도 서울 시청 앞 전철화장실. 작은 화실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과히 세계에 내 놓아도 고국의 화장실문화는 세계 제일 아닐까. 일본의 화장실이 깨끗하기로 유명하지만 일본 보다 더 앞장서 있는 게 한국의 공중 화장실이 아닌가 싶다. 어디엘 가도 휴지 한 장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이 걸 보면서 뉴욕을 생각하니 뉴요커로서 부끄러움이 앞장서 왔다. 미국의 화장실, 개선할 점이 많다.
또 좋았던 건 전국적으로 뚫려 있는 고속도로다. 동서남북으로 뚫려 있는 고속도로는 남한을 일일생산 권으로 묶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어딜 가도 뻥뻥 뚫려 있다. 서울에서 강원도 첩첩산중을 가는데도 2, 3시간이면 된다. 고속도로마다 차량들로 붐빈다. 차량에서 배기가스만 배출 안 되면 더 좋을 텐데.
과연 뉴스에서 듣던 대로 한반도 남쪽 고국은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국회에선 사회재난이라 하는데 재난이 아니라 재앙 수준임을 보았다. 10년 전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는데. 온통 하늘이 재를 뿌린 것 같이 뿌옇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만 이미 미세먼지는 국민건강을 암처럼 갉아 먹는 재앙이 되어 있었다.
미세먼지로 이제야 정신을 차린 정부지만 10년에 걸쳐 쌓여진 미세먼지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기는 힘들 것 같다. 석탄을 때는 화력발전소와 국민 1인당 1대꼴인 차량에서 배출되는 가스. 중국 발 미세먼지 등등. 과제는 산적해 있다. 한국에서 뉴욕에 다시 돌아와 하늘을 보니 그리 청명할 수가 없다. 이건 미국이 좋다.
전철을 이용하다 보니 전철 내 풍경을 유심히 볼 수 있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10명중 9명은 휴대폰을 보거나 꼽고 있다. 과연 아이티(IT)왕국이 아니라 할 수 없다. 27일 중, 책 보는 사람은 딱 한 사람 보았다. 이러니 눈과 귀만 발달하겠지. 지성을 키워주는 독서량이 없으니 고국의 지적수준이 향상될 리 없을 게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은 보았다. 책을 구입하러 유명 문구에 들렀었다. 그곳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사러 왔다. 그리고 앉아서 쉴 자리엔 책 보는 사람들로 자리가 없었다. 그래 이런 사람들이 고국에 남아 있으니 그래도 희망이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나마도 그런 책방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현상이란다.
유행을 타는 민족임을 다시 보게 됐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자가 달린 롱 패딩(padding)패션이다. 패딩을 입은 젊은이들이 서울과 온 전국을 누비고 있다. 개성이 마비된 고국의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한 번 유행이 되면 그 유행에 동반해야만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 고국의 젊은이들. 가엾다고 해야만 하나. 그렇게 보였다.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물었다. “나라가 어떠냐고?” 그러니 택시기사가 하는 말이 먹고 살기가 힘들어 나라걱정 할 시간이 없단다. 그러며 나라걱정은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서울에 사는 40대 주부. 나라가 엉망이란다. 정부가 부자들만 죽이려 한다며 한 숨을 내쉰다. 정말 부자만 죽이려는 걸까.
고국의 품엔 깨끗한 공중화장실과 뚫린 고속도로가 있었다. 또 미세먼지와 휴대폰만 보는 시민과 유행으로 휘감은 젊은이들도 들어 있었다. 문구에서 책보는 사람들에게서는 희망을. 먹고 살아 보려는 택시기사에게선 좌절을. 나라를 염려하는 40대 주부의 모습에선 걱정을 안겨주고 있는 고국은 정말 어머니의 품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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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