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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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2019-03-08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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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선우휘의 대표작 ‘불꽃’은 3.1운동, 일제압박, 중일전쟁, 해방, 좌우대립, 6.25전쟁의 민족수난사를 3대에 걸쳐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 고현의 아버지는 3.1 만세운동 중 일경의 총을 다리에 맞고 피신한 동굴에서 숨진다. 현은 학병으로 끌려가 중국 파병 중 탈출하여 만주로 간다. 해방된 고향에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꽃을 가꾸며 살고 싶어 한다. 세상사와 단절된 채 살고자 한 그는 월북했던 친구 연호가 돌아와 함께 혁명에 참가하자고 하지만 거절한다. 그런데 연호가 피가 낭자한 인민재판을 열자 ‘살인이다’고 외치며 총을 빼앗은 다음 동굴로 피신한다. 할아버지가 ‘너는 살아야 한다’고 외치다가 연호의 총에 맞는 것을 본 후 그를 총으로 쏘고 현실과 당당히 맞설 것을 결심한다. 그 순간 그의 몸에서 생명의 불꽃이 점화된다.

6.25후 허무주의에 빠진 젊은이들의 심정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소설 ‘불꽃’, 우리에게는 식민지하 조선에서 아낌없이 자신의 생명을 불꽃처럼 태운 안중근, 이봉창, 나석주, 윤봉길, 유관순, 박열 같은 훌륭한 애국독립투사들이 있다. 그들의 숭고한 삶은 우리 가슴에 ‘늘 젊고 찬란한 그대’로 남아있다.

이덕일 지음 ‘이회영과 젊은 그들’에는 부분적으로 이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있다. 김원봉이 1919년 창설한 의열단(義烈團)은 일제의 주요인물 암살과 주요기관 폭파를 실행, 일제를 경악에 빠뜨렸다.


의열단원 박재혁은 1920년 부산경찰서로 들어가 폭탄을 던져 서장이 죽었고 부상당한 그는 체포되었다. 사형선고 후 옥중에서 사망한 나이 겨우 26세, 그는 거사를 도모하고자 부산으로 가는 배 위에서 김원봉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냈다.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즐겁습니다. 그대의 얼굴을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최수봉은 1919년 3월 밀양 장날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망명했다. 밀양 경찰서에 폭탄을 투하하고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았다. 대구감옥에서 순국한 당시 겨우 27세.
백정기는 1933년 상해에서 일본공사 암살 모의 중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재판과정에서 ‘모든 것을 내가 주도했다.’고 말했다. 1934년 38세 나이에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이들은 일본 육군대장이 상해에 온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서로 저격하겠다고 나섰다. 제비를 열한 개 만들어 한 개에만 ‘유(有)’를 써넣고 뽑힌 사람이 다른 한 명을 지명해 같이 거행하는 거사였다. 거사가 성공하면 죽은 것이고 실패하면 사형 아니면 무기였다.
그렇다면 독립운동에만 신경 쓰도록 생활은 넉넉했을까? 식량이 떨어지면 전당포에 이불을 잡히고 겉옷을 팔았다. 부잣집 대문앞에 밤새 때고 버린 매탄재를 주워 때고 옥수수 가루 한줌에 상인이 버린 배추시래기를 잘게 썰어 멀건 죽을 쑤어먹기도 했다. 늘 생활고에 시달리고 활동자금이 부족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구한말 일본 제국주의와 맞선 의병들, 몽둥이와 죽창 들고 일본군 신식총과 맞서 우금치 전투를 치른 동학도들, 항일과 독립운동 속에 젊음을 유보당한 그들이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그런 고초가 닥칠 때 당당하게 지조를 지킬 수 있었을까. 혹독한 고문 속에 동지를 팔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두렵고 공포에 질렸겠지. 그러나 그들은 의연했고 절개를 지켰다.

지난 1일 아침, 퀸즈 마운트 올리벳 공동묘지에 잠든 독립운동가 황기환과 염세우 묘소 참배행사에 참여했다. 황기환, 염세우 묘소 외에 노동을 하여 번 돈을 독립자금으로 보내고 일생 홀아비로 살다가 쓸쓸히 잠든,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독립지사 수십 명이 공동묘지 여기저기에 묻혀 있다고 한다. 비석도 없이 묻힌 이들의 이름을 찾아주고 하루빨리 묘역 성역화 사업이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불꽃처럼 살다간 그들의 삶은 짧았기에 슬프지만, 찬란하게 아름답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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