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남녀노소, 빈부, 귀천, 상하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혜택(?)이 있다. 그것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한국식 나이 계산법이며, 엄격히 말하면 음력설(금년 양력 2월5일) 기준으로 한다. 나도 예외 없이 ‘뒤로 가는 법이 없이 앞으로만 가는’이 우주의 법칙에 순응해서 구정에 한 살을 더 먹었다. 그래서 고희(古稀-70)와 산수(傘壽)의 딱 한가운데 자리잡았다.
설날 아침 묵상시간에 내 나이를 깊이 생각해 보았다. 분명한 것은 100세 시대를 기준으로 잡으면, 내 인생의 사분의 삼을 살았고 이제 사분의 일이 남은 것을 생각하니, 정말 보람되게 잘 마무리하기 위해 더 잘 살아야 되겠다 생각했다.
아무리 젊게 보이려고 애써도, 얼굴에서 생기는 주름부터 걸음과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다. 최근 일본에서 노년기를 구분, 65-74세는 노년이전시기, 75-89세는 고령, 90세부터는 초고령으로 정의한 것에 따르면 나는 명실공히 고령에 속한다.
특히 지난 10년을 돌이켜 보면 나는 육신적 제한(관절염,어지럼증 등)으로 하던 일을 다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백세시대’노래를 구가하며,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는 건강한 사람들의 얘기를 자주 듣는다. 백세시대도 허리가 굽고 귀가 좀 어두울 뿐 직접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가사를 손수 처리하는 할머니도 있다. 얼마전 70세 한인 여성이 시카고 국제 마라톤 대회에서 70대 여성 부분 세계 신기록을 세워 크게 화제가 된 적도 있다. 또 중국의 왕데슌(82) 할아버지 얘기는 더 충격적이다. 79세때 패션쇼 런웨이에 올라 탄탄한 식스팩 복근을 들어낸 채 흰머리와 수염을 휘날리며 워킹하는 모습은 전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었다. 그러나 이런 이들은 타고 날 때부터 특별히 건강체질을 가졌었고, 꾸준히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극소수인들의 이야기 일뿐이다. 대부분 나이를 먹으면서 오는 육신적 후패함과 쇠락은 막을 길이 없다.
“시간이 할퀴고 간 자리는 주름살이 되고, 그가 남긴 발자국은 검버섯이 됩니다. 맑고 영롱한 아기들의 눈은 어느새 뿌연 먼지로 백태 낀 희미한 가로등이 되어 버립니다. 야들야들 했던 젖빛 피부도 쭈글쭈글한 칠면조 가죽으로 변해 버립니다. 머리에는 어느덧 허연 눈가루들이 쌓이고, 석가래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어져 버립니다. 돌멩이도 씹어 부수던 강력한 맷돌들은 거의 빠져버리고 그 자리에는 플라스틱 틀니가 들어 앉습니다. 단단한 말근육을 자랑하던 두 다리는 이제 항상 지진에 시달리고 떨리는 기둥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나는 우리말 표현 ‘나이를 먹는다’를 육신적인면과 달리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나이가 내 안에 들어와 내 몸과 인격과 삶에 자리잡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살아갈수록 나이가 들면서 경험한 희로애락, 겸손, 인내와 성찰을 통해서 배움으로 인격을 고상하게 변화시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잠언기자는 잠언 15:31에서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고 했다.
오래전 소노 아야코가 쓴 ‘당당하게 늙고 싶다’에서 저자가 말한 7가지 능력은 ‘영화의 면류관’을 쓰기 위해 갖추어야 될 자격들이 될 것이다. “자립할 것, 죽을 때까지 일할 것, 늙어서도 배우자, 자녀와 잘 지낼 것, 돈에 얽매이지 않는 정신을 가질 것, 고독과 사귀며 인생을 즐길 것, 늙음.질병.죽음과 친해질 것, 신의 잣대로 인생을 볼 것”등이다.
특별히 일생을 배우며 가르쳤던 나는 “계속 배우는 자는 계속 젊음을 유지한다(Anyone who keeps learning stays young)”는 격언을 실천하려 지금도 부단히 노력한다. 누구나 자기 나이에는 최초의 경험이기에, 젊은이나 나이든이나 나이에 적응하기는 서툴고 새롭다. 그래서 나이 먹음은 긍정적으로는 새로운 경이로움과의 만남이요, 연약해지는 육신의 제한과 하나님의 능력을 조화시켜 투쟁하면서 승리해 나가는 배움이요, 신앙체험이다.
그래서 모세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하소서 (시90:12,17)”라고 기도했다. 바울은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고 외쳤다.
나이를 먹으며 겉사람은 무기력하게 무너져 가지만 속사람은 하나님을 더욱더 동경하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며 새롭게 되는 축복을 받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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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수 목사/ 행복연구원 길라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