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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와 활명수의 협업?… 이 ‘혼종’은 어디서 왔나

2019-02-20 (수) 박세진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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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 브랜드들이 내놓는, 총체적 불균형의 패션

▶ SNS 일반화 타고 유행, 패션의 추세변화 흥미진진

게스와 활명수의 협업?… 이 ‘혼종’은 어디서 왔나

베트멍의 레인코트. 50만원대를 훌쩍 넘어선다. 베트멍 인스타그램 캡처

게스와 활명수의 협업?… 이 ‘혼종’은 어디서 왔나

게스와 활명수의 협업 제품. 게스 제공


옷을 입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유행을 따르는 거다. 자신의 내면이나 일상을 파고들어 추구하는 방향을 설정하고 구성하는 옷 입기와는 다르다. 더 사회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본인과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것도 유행하는 아이템이라면 입거나 들고 다닌다. 어울리고 말고는 별로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잇(it) 가방’이라는 말이 한참 유행한 적도 있는데 유행은 대부분의 경우 ‘유행이기 때문에 유행’한다. 어디서 시작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니다. 유행어도 그러하듯이 그 시작이 경멸이나 조롱, 편견을 담고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피해야 할 리스트가 생기기도 한다. 아무튼 유행을 따른다는 건 자기 만족보다는 남에게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춰있다는 걸 뜻한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이고 또 역사적이다. 과거엔 기발하다는 이유로 유행이 됐던 게 지금은 재미없을 수도 있다. 유행에 타이밍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렇게 돌고 돌았던 하이 패션의 유행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포멀 웨어보다 스트리트 웨어에 익숙하고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일상화한 세대가 등장하면서다. 그러니까 인터넷 유머, 인터넷 밈과 소비 패턴이 유사해지고 있다. 패션브랜드 베트멍은 초창기에 레인 코트나 DHL(국제배송업체) 로고 티셔츠 같은 걸로 인기를 끌었다. 레인 코트는 검정색 합성 소재 비옷에 커다랗게 로고가 적혀 있는 옷이다. DHL은 그냥 남의 회사 시그니처 컬러에 남의 회사 로고가 적혀 있는 티셔츠다. 처음에는 그냥 내놨다가 나중에 저작권 등 분야에서 합의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둘 다 물론 비싸다.


비옷도 그렇고 티셔츠도 그렇고 전통적 방식의 의류에 비해 장점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옷이지만 대단히 기능적이지도 않고, 말 그대로 패션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생긴 비옷, 커다란 로고, 비싼 가격 등은 그 조합의 기이함 자체가 화제가 돼 일부 패셔너블한 사람들, 이어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세계로 퍼져나갔다.

발렌시아가 스피드러너나 트리플S 같은 못생긴 스니커즈들, 프린팅 스웨트셔츠 등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일단은 저게 뭐지, 가격은 왜 저렇지, 전통의 패션 하우스가 왜 저런 제품을 내놓지라는 의아함이 시작이다. 하나의 제품을 둘러싼 이 ‘총체적 불균형’은 패션이 내놓는 일종의 유머이고, 쉽게 동참할 수도 있다. 구입해서 신고 해시태그를 달아 SNS에 올려 놓으면 된다. 이런 접근은 요새 어떤 광고 캠페인보다 확실한 효과가 있다.

주변에 자신의 패셔너블함, 자신의 트렌디함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없어서 슬퍼하고 있었어도 전 세계에서 해시태그를 따라 들어와 ‘좋아요’를 누르고 말을 건다. 이렇게 동료가 생긴다. 패러디 브랜드들이 생겨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웃음은 모이면 더 커진다.

기발한 프린트의 티셔츠와 못생긴 운동화는 물론이고 강아지 밥그릇, 소화기, 서류 클립 같은 자질구레한 것까지 하이 패션 로고가 달린 수많은 다양한 제품들을 만날 수 있다. 구찌 같은 브랜드는 돼지해를 맞이해 춤추는 돼지 애니메이션을 선보이며 따라하고 공유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아무튼 유머는 물론이고 정치적 사회적 문구까지 그 폭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방법이 무엇이든 강렬하고 인상적이고 동시에 공유가 가능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이를 이용하는 추세가 약간 다른데, 몇 년 간 많았던 건 ‘의외의 협업’이었다. 스파오는 빙그레 아이스크림들이 그려진 시리즈를 내놨고 게스는 소화제인 활명수와 협업했다. 필라는 메로나 아이스크림을 그린 티셔츠를, 에잇세컨즈는 농심의 과자들과 협업했다. 금융권과 협업해 연이율 같은 게 적혀 있는 티셔츠가 나오기도 했다. 익숙하고 친숙한 제품들이지만 옷 위의 프린트로는 낯설다. 반면 재미있고 전달이 쉽다. SNS에 올리면 어디가 재미있는 건지 누구나 한 눈에 알아본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익숙한 새로운 구매자들이 사진이 잘 나오는 식당을 선호하고, ‘좋아요’를 기대하며 재미있는 사진을 올리면서 공유를 하듯 패션 역시 마찬가지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새로운 생활 방식이 패션의 큰 흐름도 바꿔놓는다. 이런 추세가 앞으로 또 어떤 큰 변화를 만들어 낼지 기대가 된다.

<박세진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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