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칼럼] 목사와 스칸달론
2019-02-14 (목)
박상근 목사/ 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예언하자 베드로가 나서서 절대로 그럴 수 없다며 십자가를 저지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하여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비판하시며 내 뒤로 물러나라고 하셨다. 이 때 ‘넘어지게’하는 것을 그리스어로 ‘스칸달론’이라고 하는데 ‘덫’을 뜻한다. 영어의 scandal은 바로 이 스칸달론에서 나왔다. 그 뒤로 주로 성적인 추문을 뜻하는 의미로 쓰여 지고 이 덫에 걸리면 누구든 사회적으로 매장된다.
한국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감으로 강력히 예상되던 전직 도지사가 ‘스칸달론’의 덫에 걸려 법정 구속되면서 인생 자체를 망가뜨리는 모습을 보고 한숨이 나왔다. 앞으로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지만 그 결과와 상관없이 그의 재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꿈꾸던 사람이 그토록 자기 관리에 약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애초에 그는 외부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내면이 아주 약한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보다 더욱 자기 관리에 신경 써야할 사람이 바로 목사이다. 목사는 정략으로 세상을 이끄는 정치인 보다 인간 영혼을 책임져야 할 영혼의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 스칸달론의 덫에 걸려 사회면을 장식하는 유명 종교지도자들을 보아왔던가! 전 세계적으로 예외가 없다. 최근 미국에서는 대형 교회 스타 목회자가 스칸달론으로 물러난 후 그 후유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민 교회의 한인 목회자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한 이단의 교주가 수십 년에 걸쳐 다수의 여신도를 성적 도구로 삼다가 중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어 있다. 이단의 개념이 없는 일반인들에게는 일개 목사의 파렴치한 행위로 비쳐질 것이고 그 모든 피해는 교회가 짊어지게 될 것이다.
한 때 한국의 청년들에게 대단한 영향을 끼쳐왔던 한 목사는 청년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가 사회적으로 엄청난 물의를 일으키고 목사직을 사임한다고 했다가 다시 목회를 재개하여 여전히 시끄럽다. 그 외의 숱한 목회자들이 스칸달론의 덫에 걸려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답답한 상황을 마주하게 하고 있다. 가톨릭의 경우 사제들의 성추문에 대한 합의금 지급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어왔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들지 모른다. 불교계도 예외는 아니다. 목사의 입장에서 다른 종교의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종교를 초월하여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근본적인 질문이 하나 있다. 이유가 뭘까? 인간 영혼의 구원을 위해 자기를 버리고 희생하기로 서약한 목회자들, 또는 종교 지도자들이 그토록 자주 스칸달론의 덫에 걸려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이유가 뭘까? 나아가서 그를 믿고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을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고 절망하게 만드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불완전한 인간 본성의 문제인가, 개인의 성품의 문제인가? 아니면 훈련의 부족인가, 제도의 문제인가? 왜 그토록 많은 스칸달론으로 인한 추락을 보면서도 동일한 비극은 반복되는 것인가? 이 스칸달론의 비극은 결코 피할 수 없는 인류의 형벌인가? 이제 우리는 스칸달론의 원인과 과정을 살펴보고 어찌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그 예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어쩌면 지금도 그 어디선가 그 어둠의 고통에 빠져서 절망하고 있을 모든 당사자들이 구원의 희망을 꿈꾸는 것은 과도한 욕심일까?
<박상근 목사/ 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