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립학교 성경수업’ 핫이슈로 부상

2019-02-13 (수)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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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전통가치 회복” vs “정교분리 위반” 찬반 팽팽

▶ 수업 개설 의무화 법안 주마다 잇달아

미국 주별로 공립학교에 성경 수업 개설을 의무화하는 법안(Biblical Literacy Act)이 최근 곳곳에서 추진 중이다. 관련 법안 제정이 급증하면서 ‘USA 투데이’와 ‘폭스(Fox) TV’를 비롯한 주류언론들도 줄줄이 관련 이슈를 다루고 나섰다. 교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민감한 이슈로 급부상하면서 뜨거운 감자가 된 논란의 핵심과 배경 등을 살펴본다.

▲관련법 추진 현황

공립학교의 성경 수업을 의무화하거나 권장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 중인 곳은 올해만 해도 플로리다, 인디애나, 미주리, 노스다코타, 버지니아, 웨스트버지니아 등 최소 6개주에 이른다. 지난해에도 앨라배마, 아이오와, 웨스트버지니아 등 3개주에 유사 법안이 상정됐지만 무산됐고 테네시는 내용면에서 다소 차이가 큰 관련법을 통과시켰다. 앞서 2017년에도 켄터키, 텍사스, 오클라호마 등이 유사 법안을 제정했다.


법안은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주내 고등학교에 성경 수업을 의무 개설하고 필수과목이 아닌 선택과목으로 제공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수강하도록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 골자다. 수업도 성경의 구약과 신약이나 히브리어로 쓰인 성경을 공부하는 내용이다.

플로리다는 현재도 성경 수업을 개설할 수는 있지만 의무 조항은 아니며 1월 상정된 법안에는 의무 개설과 더불어 짧은 묵상 시간도 포함시키도록 명시했다. 노스다코타 법안은 공립학교는 물론 사립학교도 대상에 포함했다.

▲성경 수업 개설 이유

관련 법안 마련에 앞장선 주의회 의원들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건국된 미국이 전통적 가치를 회복하려면 학생들의 성경 공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성경은 2,000년이 넘는 역사가 기록된 자료라는 측면에서도 충분히 교육할만한 학문적 의미가 크다는 주장이다.

노스다코타에서 관련법을 공동상정한 아론 맥윌리엄스 주하원의원(공화)은 주류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성경은 미국 사회를 구성하는 일부를 차지하고 있어 교실에서도 마땅히 배워야 한다. 판사 제도도 구약의 출애굽기 18장에서 비롯됐고 연방의회 제도도 성경에 근간을 두고 만들어졌다”며 “신앙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학교에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문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선택과목으로 개설하는 것도 신학적 접근이 아니기에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기 위함이란 설명이다.

▲기독정치단체 배후

관련법 상정이 갑작스레 늘어난 배경에는 보수주의 기독교 정치단체들이 추진 중인 ‘프로젝트 블리츠’(Project Blitz)가 등장한다. 법안에 반대하는 정치인과 단체들은 ‘프로젝트 블리츠’에 연관된 지지 단체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부터 그를 지지했던 백인 복음주의자들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연방의회 기도자 재단(CPCF)’, 기독교 공익 로펌인 ‘내셔널 법률 재단’, 비영리기구인 ‘월빌더스’ 등이 프로젝트에 가담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최근 트위터에 ‘공립학교 성경 수업 부활 움직임은 훌륭한 일’이라며 지지와 응원을 보냈다.


2015년부터 진행된 ‘프로젝트 블리츠’는 공립학교 성경 수업뿐만 아니라 ‘기독문화 주간’과 ‘성경의 해’ 제정 및 동성애자와 성전환자의 민권 제한 등도 주도했다. 공공정책에 보수적 가치를 심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미국 화폐에도 적혀 있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란 의미의 국가적 표어인 ‘In God We Trust’를 모든 공립학교마다 의무 게시하는 법안도 추진했다. 애리조나, 테네시, 플로리다, 루이지애나 등 6개주가 관련법을 통과시켰고 올해는 뉴욕을 비롯해 알래스카, 일리노이, 인디애나, 켄터키, 미주리, 미시시피, 네브래스카 등이 추진 중이다.

▲반대론자의 주장

공립학교의 성경 수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국가와 교회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인 ‘정교분리’를 가장 큰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정교분리미국인연합(AUSCS)은 공립학교의 성경 수업은 학생들에게 기독교적인 신념을 심으려는 교묘한 책략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성경적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특정 종교에 대한 선호도를 높일 위험을 초래한다고 경고하며 수정헌법 제1조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종교, 언론 및 출판의 자유와 집회 및 청원의 권리를 다룬 수정헌법 제1조는 연방의회가 국교를 지정하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정부가 특정 종교를 옹호하거나 강요할 수 없는 만큼 성경 수업보다는 문학, 예술, 음악 등과 연결한 비교종교 방식으로 교육하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역사적으론 합법

청교도들이 세운 미국에서는 문맹퇴치를 위한 영어교육 교재로 성경을 사용해왔다. 미국 최초의 영어교육 교재인 1690년의 ‘뉴잉글랜드 프라이머’도 성경 구절을 활용해 영어 알파벳부터 지도했고 이후 200년간 미국 공립학교는 물론 사립학교와 홈스쿨링, 종교학교 등의 교재로 채택됐다.

1783년에 노아 웹스터의 ‘블루 블랙 스펠러’로 이름이 바뀐 이후로도 오늘날 기독교 계열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재보다 훨씬 성경적인 내용을 담아 여전히 미국 학교의 영어 교재로 사용됐다. 1836년 첫 출판된 ‘맥거피’도 성경 구절로 영어를 교육하는 교재였다.

1963년에는 연방대법원이 ‘공립학교의 성경 읽기 의무화가 수정헌법 제1조 위반’이라고 판결한 탓에 많은 사람들이 공립학교의 성경 수업이 금지된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판결문에는 종교적 성격을 떠나 역사적 차원에서 비교종교, 종교 역사, 문명 발전 관계 등 객관적 시점에서 다룬 종교 교육은 권장하며 이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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