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잘 죽는다는 건 무엇인가… 법의학자의 근원적 질문

2019-02-04 (월)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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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매주 시체를 본다
유성호 지음, 21세기북스 발행

일병 한 명이 부대 안에서 죽었다. 선임병이 빵을 먹고 있던 후임병을 툭 쳤는데 빵이 목에 걸려 사망에 이르렀다는 증언이 따랐다.

군대 내에서 실시한 부검 기록에도 기도에 음식물이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질식에 의한 사망으로 결론 내릴 만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질식사로 넘기기엔 강한 의문이 남았다. 일병의 배와 가슴, 등, 양쪽 팔다리에 멍이 넓게 퍼져 있었다. 선임병들의 가혹한 상습구타에 따른 멍이었다. 사망자의 사진을 본 한 기자가 의문을 품었고, 법의학자인 유성호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에게 의견을 구했다.

유 교수는 기도폐색이 아닌 외상성 쇼크에 따른 사망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사람은 사망 단계에서 근육이 이완되는데, 일병의 목에 남은 음식물은 구타에 의한 쇼크사 이후 몸 속 근육이 풀리면서 역류한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의문사 보도가 이뤄졌고, 사건에 대한 재조사가 뒤따랐다. 안타깝게 죽음을 맞은 일병의 억울함이 법의학 덕분에 조금이나마 덜어진 셈이다. 유 교수의 저서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에 담긴 사연 중 하나다.

병 등으로 인한 자연사는 의문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외인사는 종종 물음표를 만들어낸다. 살인인가, 사고인가, 자살인가에 따라 사회적 수용이 달라진다. 죽음의 원인에 따라 법원과 검찰, 경찰, 보험회사의 반응과 대책이 다르다. 법의학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유다.

사회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법의학은 의학계에서 비주류 중의 비주류다. 저자도 법의학으로 진로를 택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어렵사리 의대를 들어가서 왜 편한 길을 두고 이상한 길로 빠지냐는 거였다. 비인기 전공이니 전공자는 극소수다.

전국 40개 의과대학 중 법의학 교수가 있는 곳은 10곳에 불과하다. 2017년 기준 국내 등록 의사 수는 12만1,571명인데 이 중 법의학자 수는 딱 40명이다. 1년에 두 번 있는 학회에 참석할 때 법의학자들은 절대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같은 버스를 탔다가 치명적인 교통사고라도 나면 국내 법의학자들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책은 사건이나 부검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죽음에 대해 알면 우리가 죽음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알게 된다는 생각에서다. 저자는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 본다. 삶의 마무리를 각자 준비할 수 있어야 하고 죽음의 순간을 각자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계청 사망 통계에 따르면 2012년 사망 장소는 집이 18.8%, 의료기관이 70.1%, 사회복지시설 등 기타가 11.1%였다. 가족을 보며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만 대부분이 중환자실에서 외롭게 세상을 떠난다.

한국인이 웰다잉(잘 죽는 방식)과 거리가 멀다는 점을 보여주는 또 다른 통계도 있다.
한국에선 임종을 앞둔 암환자의 모르핀 사용률이 2.3%에 불과하다. 미국은 50%가 넘는다. 통증 완화에 특별한 효과를 지녔음에도 모르핀 사용률인 낮은 이유는 돈 때문이다.

유 교수는 웰 다잉을 위해서는 의료 시스템의 변화도 필요하나 개개인의 준비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잘 죽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죽음에 대한 인식이다. “죽음과 친숙한 삶이야말로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삶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책은 유 교수가 서울대 기초교양원에서 2013년부터 하고 있는 인기 강의 ‘죽음의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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