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아프가니스탄의 전후 복구사업을 돕기 위해 근무하던 남편의 휴가였다. 타지키스탄을 향발하는 12명 정원 탑승의 유엔기를 타고 아프간 산악 지대를 비행할 때엔 긴장과 초조함이 극에 달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접경에 빈 라덴이 숨어 지내던 시기였다. 로켓포로도 저격 할 수 있는 저공 비행에 새삼 두려움이 앞섰다.
타지키스탄의 수도인 두샨베(Dushanbe)) 공항은 매우 작고 한산했다. 두샨베 시내를 구경하고, 다음날 소개 받은 구 소련군 출신 보디가드와 함께 택시를 타고 세계에서 유일하다는 라듐온천으로 향했다. 타지키스탄은 아름다운 산들과 호수로 유명한데, 라듐온천으로 가는 겨울 길은 쓸쓸해 보였다. 빈 계곡(溪谷)에 조약돌들은 추운 표정으로 서로를 의지하고, 옷 벗은 마른나무들도 외로워 보였다.
높은 산중에 자리한 국영 호텔은 너무 크고 퇴락해서 오래된 성 같기도 하고, 도시의 흥망성쇠를 가늠해 보는 슬픈 돌 무덤 같았다. 한때는 소련 공산당 서기장들의 휴가지였다는 그 호텔은 구조가 묘한 미로 같았다.짧은 해는 지고, 목욕을 하려고 세면실에 들어갔는데, 흐릿한 조명아래 탕에 물을 받으려던 나는 경악(驚愕)했다.탕 옆쪽의 쥐덫에 걸린 쥐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호텔방에 쥐덫이라니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현실이었다.온천 욕은 차치(且置)하고, 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그러나 밖은 벌써 어둠이 짙게 깔려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러 간 이층 식당도 어둡기는 매 한가지였다.다행히 메뉴에는 영어 표기가 되어 있어서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 방으로 돌아 왔는데,문제는 침대였다. 너무 낡고 스프링이 튀어 올라와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뜬눈으로 밤을 지새면서 옛날의 화려했던 호텔의 명성을 상상해 보았다. 이른 아침,남편은 보디가드와 함께 마을로 내려가 새 호텔을 찾았다.단 하룻밤의 으스스하고, 암울(暗鬱)한 호텔의 악몽은 오래된 기억처럼 뇌리에 남았다.
아담한 동네의 새 호텔은 깨끗하고 사람 사는 온기도 느껴졌다.보이지 않는 전쟁 중인 아프간을 벗어난 심신은 라듐 온천 욕과 함께 평온을 느끼며 무장해제 되었다.그 곳 식당에서 일하는 작고 가냘픈 소녀의 순진하고 수줍은 모습이 청량감을 더해 주었다.
밤새 내린 함박 눈으로 마을은 온통 은빛 찬란하고 눈부신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다. 차고 하얀 눈은 욕망과 탐욕, 거짓과 시기가 단절된 세상, 오염된 점하나 까지도 묻어버리는 피안(彼岸)의 세계로 변모했다. 사람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고 동화 되어 가는 것 같다. 티없이 맑아지는 마음과 영혼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 아프가니스탄의 일탈(逸脫)을 해소하기에 충분했다.
4일간의 아쉬운 일정을 마치고, 임지로 향하는 길은 예측불허였다. 좁은 길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득한 낭떠러지와 길의 경계선이 눈 때문에 구분되지 않을 정도였다. 곡예를 하며 산길을 내려오다 택시가 눈 속에 박히고 말았다.운전기사가 눈 장비를 전혀 준비하지 않아 우리 일행은 원시인처럼 엎드려 맨손으로 차 바퀴를 파냈다. 기쁨도 잠시, 끝없이 쏟아지는 눈송이에 갇혀 가시거리는 1미터 정도였다. 할 수 없이 보디 가드와 남편이 자동차의 길잡이가 되어 눈길을 달리는데, 마치 두 개의 눈사람이 언덕 위를 달리는 애니메이션 영화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자동차 안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우습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여, 웃다가 눈가가 촉촉히 젖어 있음을 느꼈다.
타지키스탄 공항은 위압적이고 생경(生硬)했다. 군복차림의 세관직원이 짐 검사를 하다 골프 공을 발견하고, 위협(威脅)적인 눈빛으로 무엇이냐고 물었다. 황당하고 웃음이 났지만 정색을 하고 골프 공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골프 공에 흥미 있어 하는 것 같아 공을 그에게 주었다.냉전 종식의 동시대에 살면서도 봉쇄정책이 가져다 주는 문명의 충돌을 심각한 편견(偏見)으로만 간주 할 것 인가?
4반세기 동안 전쟁을 치르며 곳곳에 탄흔으로 피폐해진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향하는 두 사람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있게 쳐다보았다. 다행히 메뉴에는 영어 표기가 되어 있어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호텔방으로 돌아왔는데, 문제는 침대였다. 너무 낡아서 스프링이 튀어 올라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등에 옷들을 괴고 잠을 청했으나, 예민한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면서 옛날의 화려했던 호텔의 명성을 상상해 보았다. 이른 아침, 남편은 보디가드와 함께 마을로 내려가 새 호텔을 찾았다. 단 하룻밤의 으스스하고 암울한 호텔의 악몽은 오래된 기억처럼 뇌리에 남았다.
아담한 동네의 새 호텔은 깨끗하고 사람 사는 온기도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전쟁중인 아프간을 벗어난 심신은, 라듐 온천 욕으로 평온을 느끼며 무장해제 되었다. 식당은 따스했고, 그 곳에서 일하는 작고 가냘픈 소녀의 순진하고 수줍은 모습이 청량감을 더해주었다.
밤새도록 함박 눈이 내렸다. 찬란한 은빛의 눈부신 세상은 아름다웠다. 욕망과 탐욕, 거짓과 시기가 단절된 세계, 오염된 작은 점까지도 묻어 버리는 피안(彼岸)의 세계로 변모했다.
사람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고 동화되어 가는 것이리라. 티없이 맑아지는 마음과 영혼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 아프가니스탄의 일탈(逸脫)을 해소하기에 충분했다.
4일간의 아쉬운 일정을 마치고 택시로 하산하는데, 좁은 길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득한 낭떠러지 밑으로 주먹만한 눈은 하염없이 내렸다. 산길은 눈에 덮여 상황은 예측불허였고, 차가 산밑 눈 속에 박히고 말았다.
우리 일행은 원시인들처럼 엎드려 눈 속의 바퀴를 손으로 파내는 상황이 되였다. 기쁨도 잠시, 함박꽃 같은 눈 속의 가시거리는 1미터 정도였다. 할 수 없이 보디가드와 남편이 차의 길잡이가 되어 눈 길을 달리는데, 마치 두 개의 눈사람이 달리는 만화 같은 모습이었다. 자동차 안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우습기도하고 측은하기도 하여 웃다가, 눈가가 촉촉히 젖어 있음을 알았다.
타지키스탄 공항은 위압적이고, 생경(生硬)했다. 군복 차림의 세관 직원이 짐 검사를 하다 골프 공을 발견하고 무엇이냐고 물었다. 황당하고 웃음이 났지만 정색을 하고 골프 공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골프 공에 흥미 있어 하는 것 같아 공을 그에게 주었다. 냉전 종식의 동시대에 살면서도 봉쇄정책이 가져다 주는 문명의 충돌은 문명권이 가진 오만의 소산인가?
4반세기 동안 전쟁을 치르며 곳곳에 총탄의 상흔과 피폐한 거리의 수도 카불을 향한 발걸음은 무거웠다.
<
김희우/ 베이사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