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액 연봉보다 홈리스 먹이는 일이 훨씬 보람”

2018-11-22 (목) 유정원 종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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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제의 인물 비영리단체 RLC 설립 운영 로버트 리 CEO

▶ “식당의 남은 음식 모아 굶주린 이웃에 주자” JC모건 그만 두고 봉사

“로버트 리의 아이디어는 간단해 보인다. 식당에서 남는 걸 가져다 유용하게 쓰자는 것이다.”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 최신호에 실린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기사의 제목도 눈길을 끈다. ‘당신이라면 연봉 수십만 달러 일자리를 그만두고 홈리스를 돕겠는가? 27세의 이 사람은 그렇게 했다.’ 이 기사는 추수감사절 시즌에 MSN.com 등 주류 언론에 잇따라 보도되면서 훈훈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인 로버트 리 씨는 지난 2013년 비영리단체 RLC(Rescuing Leftover Cuisine)를 설립하고 지금도 CEO로 일하고 있다. 이민 가정에서 자란 리 씨는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세계적인 투자금융회사 JC모건에 입사해 ‘여섯 자리 숫자’의 고액 연봉을 받았다. 하지만 밥을 굶는 홈리스와 빈곤층 이웃을 돕다가 아예 회사를 나와 RLC를 창립하고 인생을 ‘올인’하고 있다.


대학을 다닐 때 그는 ‘새 두 마리, 돌 하나’라는 클럽에 가입했다. 먹지 않고 남은 파스타, 채소 등의 음식을 일주일에 5일 구내 식당에서 얻어다 근처 홈리스 셸터에 갖다 주는 봉사활동을 벌였다. 고액 연봉자가 된 이후에도 그의 가슴 속에는 추위와 굶주림에 떠는 이웃이 떠나지 않았다.

리 씨는 뉴욕대 동문인 루이사 첸 씨와 함께 독특한 비영리 단체를 세웠다. 이들은 식당에서 팔다 남은 베이글 한 봉지, 수프 한 냄비를 통째로 모은다. 팔다 남은 찌꺼기가 아니라 온전한 상태의 식품만 취급하는 것이다.

또 일주일 내내 음식을 공급한다. 사람은 매일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 자원봉사자로만 운영한다. 예산을 줄이는 효과도 있지만 음식에 자발적인 사랑과 정성을 담을 수 있다.

행사 상금으로 탄 1,000달러를 갖고 시작한 사역은 열매를 풍성하게 맺고 있다. 첫째 주에 모인 성금으로 20명의 홈리스에게 풍성한 스파게티 미트볼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단체를 설립한지 불과 2년 만에 25만 파운드의 식품을 배고픈 이웃에게 나눌 정도로 급성장했다.

서너 명으로 운영하는 소규모 식당들이 도움을 주다가 이제는 파네라 브레드 같은 대형 체인들이 전국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RLC가 음식을 제공하는 홈리스 셸터나 음식 배급센터는 동부의 워싱턴DC에서 서부의 오리건 포틀랜드까지 미 전역의 16개 도시를 망라하고 있다. 올해 27세 난 젊은이가 맺은 결실이다.

“JP모건과 RLC에서 각각 한 시간 동안 일하며 내가 끼칠 수 있는 영향을 비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차이는 어마어마했어요. 어떤 셸터는 우리가 공급한 음식으로 300명에게 매주 3일씩 저녁식사 일체를 먹일 수 있게 됐다고 전해 왔죠. 직장을 그만 두길 정말 잘한 것 같아요.”

로버트 리 씨의 스토리는 지난 2015년에도 CNN과 허핑턴포스트 등 유력 언론에 크게 소개된 바 있다. CNN은 당시 “미국에서 음식의 40%가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버려진다”면서 “버리는 음식물 만으로도 기근을 근절시키기 충분하다”는 그의 말을 전했다. 장문의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서 CNN은 리 씨를 ‘영웅’이라고 표현했다.

고액 연봉 일자리를 박차고 나온 용기의 뿌리를 주류 언론이 물을 때마다 리 씨는 대답한다. “초등학교 때 아이들이 반도 먹지 않은 샌드위치를 버리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이민 초기 수도 없이 이사를 다녔고 어떤 때는 먹을 것을 구하기도 힘들었어요. 부모님은 늘 음식을 남기지 말라고 형하고 저한테 가르쳐 주셨습니다.”

<유정원 종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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