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송이
2018-11-21 (수) 08:01:59
이재순 인디애나
내가 살던 수원근처 배나무골이라 불리는 시골 마을에는 배나무 보다 밤나무가 많았다. 동네 산에도 밤나무가 즐비하고 우리 집 담 밖에도 두그루의 큼직한 밤나무가 초가 지붕위를 굽어보고 있었다. 동네에서 제일 굵은 밤이 열린다는 그 밤나무는 우리집의 자랑거리 였으며 꼬마 애들의 그늘진 놀이터이기도 했다. 가시 투성이의 밤송이는 때가 되기까지는 여간해서 떨어지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아는 애들은 마음놓고 밤나무 주위를 돌면서 숨박꼭질이나 줄넘기 놀이를 했다.
봄에는 희끄무레한 색깔에 지렁이 몸둥이처럼 길죽하게 늘어진 별볼품 없는 꽃이 핀다. 그러던 초여름 가지 끝에는 매서운 가시투성이의 동그란 밤송이가 덮인다. 하필이면 피부를 고슴도치처럼 날카로운 가시로 덮어야만 했을그 숨은 뜻은 무엇이었을까.
그 속에 무슨 귀한 것을 숨기고 있기에 그리도 추한 모습으로 잎사귀 뒤에 숨어서 남의 시선조차 피하면서 살아야 했었을까. 그 누구하나 눈길을 주지 않는다. 나비나 벌떼도 피해가는듯 무시무시한 열매이다. 벌레들도 그 날카로운 가시방벽을 뚫지 못한다. 아랑곳 하지않고 밤송이는 여름내내 흔들어 대는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잘도 버틴다. 마치 몸둥이를 덮고있는 가시가 덮쳐오는 비바람을 찢어 조각을 내면서 혼을 내주는 것 같았다. 동네 꼬마 사내애들 조차도 감히 접근을 피한다. 설사 밤송이 하나 따낸다 해도 밤송이는 좀체로 껍질을 까기가 쉽지 않다. 손으로는 엄두도 못내고 낡은 고무신 발 밑에 놓고 비틀다 보면 가시가 신발 밑을 뚫고는 발바닥을 침범해 들어오기가 일쑤이다.
그 길고 뜨거운 여름의 햇살이 뒷뜰의 감나무에 홍시의 예쁜 구슬을 치장시키기 시작하면, 밤송이도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한다. 귀뚜라미 소리까지 덩달아 때를 재촉하면, 가시성벽의 두터운 벽에 십자가 모양의 가는 줄이 그어지면서, 서서히 그 줄을 따라 껍질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살갖이 찢어지는 아픔을 아는양 그렇게 조금씩 벌어진다. 산고의 고통을 치룬다. 드디어 벌어지는 틈새 사이로 놀랄만한 씨앗, 옹골차게 여물은 밤톨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름내 숨겨 두었던 보석, 매끄럽고 반질반질 윤기가 도는 짙은 갈색의 몸매가 보인다. 믿어지지 않는다. 털가시 투성이의 몸매에서 그렇게 예쁘고 부드러운 생명체를 만들고 있었다니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러더니 굳게 품고 있던 옥동자를 사정없이 밖으로 밀어 떨어트린다. 떠나야 할 시간임을 차갑게 일깨운다. 세상에 나가 네 몫을 해야한다고 따끔하게 가르치는 시간이다.
내것이라는 집착을 버리고 때가 오면 떠나 보내야 하는 지혜는 어디서 익힌 것일까. 사랑하기에 보내고, 사랑하기에 슬픔을 견디어야 함은 어미의 본능이었을까.
밤톨이 떠난 다음에도 밤송이는 여전히 가지에 붙어있다. 껍질 뿐인 밤송이는 땅에 떨어진 밤톨을 무척이나 자랑스레 내려다본다. 그나름대로의 싹을 틔어줄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안다. 내어줌은 손해보는 잃음이 아니라 다시 채우는 얻음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재순 인디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