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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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따스한 배려

2018-11-14 (수) 방인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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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문예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는 날이다. 모임장소가 마침 한국마켓이 있는 샤핑몰의 식당이다. 도로가 한가해 트래픽 잼의 가산시간이 고스란히 여유분으로 남아, 한국시장에 들렸다. 필요한 게 딱 두서너 가지뿐이기에, 샤핑카트를 안 끌고 간단히 바구니만 들었다. 그랬건만 세일품목들을 그냥 못 지나치고, 또 욕심이 많고 해서,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다섯 보따리가 됐다. 내가 또 ‘미련 떠네!’ 하면서 낑낑대고 걸을 때였다.

“저기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보고 그러나? 누구지?’ 하고 돌아다보니 영 기억에 없는 낯선 얼굴이다. 의아해서 “저요?” 했더니 “네! 무거운 것 들지 마시고 제 카트에 실으세요.”한다. 내 나이보단 제법 아래인 푸근한 인상의 여자였다. 여하튼 생판 모르는 사람으로 부터의 배려와 친절이 고마워서 ‘그럴까’ 했다.

문득 식당 쪽에 차를 세우느라 파킹장 제일 끝에다 차를 세워놓은 사실이 일깨워졌다. 모르면 몰라도 분명 이 여자 차는 내차보다는 가까이 있을 거였다. 나 때문에 거리상, 시간상, 돌고 허비하는 폐까지 끼치기는 정말 양심상 미안했다. 그래서 “제 차를 멀리 주차 했어요” 했더니 “괜찮아요!” 하면서 생글 웃는 얼굴표정이 참 착해 보인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하고는 걸음을 빨리했다.


그 여자는 역시 내 짐작대로 나보다 훨씬 앞에서 멈췄다. 그렇게 잠깐의 대화 후 헤어졌는데, 고마운 여운이 상큼하니 오래 갔다. 왜냐하면 그 여자의 따스한 가슴과 용기가 달리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도 간혹 타인에게 사소한 도움을 주고 싶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이라 무심하기도, 용기가 안 나서도 막상 실천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은근히 기분 좋은 배려를 되새기며, 얼마 전 목도했던 무경우의 사람들이 또 떠올랐다.

내가 참외를 사려고, 골은 참외는 없나 하면서 박스를 열어 확인하고 있던 차였다. 그때 은퇴부부로 보이는 남자 여자가 내 옆으로 왔다. 나처럼 박스를 열어보더니 나쁜 게 있나보았다. 아마도 상자 째 다른 걸로 바꾸고 하느니보다 나쁜 것을 교환하나보다 했다. 그런데 한 두 개가 아니고 자꾸 바꾸는 게 아닌가. 문제는 같은 값의 참외 상자지만 작은 건 10개들이, 큰 건 8개들이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10개짜리 박스에다 8개짜리 참외로 바꿔 채우는 중이었고. 이해 안 되는 게 남자도 “이거!” 하면서 ‘참외 바꿔치기’에 합세하는 거였다.

내가 미국에 와서 놀란 것 중의 하나가, 슈퍼에서 미국여자들이 너무도 아무렇지도 않게 포도나 체리 같은 걸 주저 없이 따먹어보는 거였다. 그럼 아무래도 상품은 하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또 내가 남편과 시장을 잘 안 다니는 연유가 있다. 파나 상추 등 파운드가 아니고 개수로 파는 물품은, 내 깐엔 좀 실한 걸로 고른다고 들었다 놓았다 비교하면 꼭 한마디 한다. “다 그게 그거지!” 하면서 창피하단다. (뭐 그렇긴 하지만,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꼭 살피고 사게 되지 않던가. 나만 그런가? 모르겠다.)

하여간 내 입장은 그런 터라, 손발 척척 잘 맞는 기이(?)한 참외부부를 더 눈여겨보게 됐다. 최신명품 백과 명품구두에다 옷차림새로 보아 골프까지 치고 오신 참이다. ‘아! 겉은 명품이고 속은 싸구려구나.’ 저러면 마켓의 손실이고 결국 도미노 현상으로 인한 가격 상승 지출은 오롯이 최종소비자들의 몫이다. 저렇게 고급으로 꾸민 사람이, 어째 가장 기초적인 최소한의 양심과 경우를 모르는 저급일까? 아니 알면서도 외면할까? 그랬기에 이 마켓에 올 때마다 그 얌체 참외부부가 떠올라 쓴 웃음이 나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 어질고 선한 그 여자를 보면서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고 느껴졌다. 그 참외부부는 행위야 또렷하게 기억해도 얼굴은 싹 잊었다. 그런데 이 천사표 여자의 얼굴과 표정은, 내 기억에 오래 오래 생생히 남게 될 이유다.

<방인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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