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커피집에서 모닝커피 할까? “
'브라우' 라고 하는 저 집, 출근 때마다 운전하며 바라보는 회색칠을 한 카페다.
“ 안녕하세요?
저음의 굵은 목소리로 맞이하는 젊은 이에게 카페라떼 하나, 카푸치노 한 잔, 그리고 크로와상을 따스하게 데워 달라고 주문한다.
그러면서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오늘이 우리 부부 결혼 30주년이예요." 라고 속삭인다. 창가로 자리잡고 앉아보니 정류장 앞이다. 출근하려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커피 냄새가 좋은 지 흘낏거리며 이쪽을 바라본다. 눈이 마주친다.
'웬 중늙은이들이 아침부터 우아하게 커피를 앞에 놓고 있을까? 안 어울리게스리.... ' 이런 생각들을 할까봐 공연히 민망하다. 예쁘게 낙엽무늬를 띄운 커피의 형상을 망가뜨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마시며 풀어지는 향을 맡는다. 커피향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오래 전, 어느 날 남편이 초록색 돼지 저금통을 사들고 왔다.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거기에 접어 집어넣을거고 우리 결혼 30주년이 되는 날에 그것을 열어 선물을 사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때로 100달러짜리 지폐도 집어넣는다. 그 지폐를 넣을 때면 난 남편에게?
“그 돈을 넣으면 지금 쓸 돈이 없는데.. “ 하며 한마디 한다.
그런데 그 저금통이 얼마나 크고 못생겼는지 나는 침대 밑에 넣어두었었다. “ 저 통을 다 채우려면 몇 년은 걸릴 거야.” 중얼거리며...
“축하한다 ! ”느닷없이 아버지가 전화하신다.? "뭘요? ", "결혼기념일이지."한국 시간으로 하니 반나절이 빠른 11월6일 기념일을 벌써부터 축하한다고 전화해주는 아버지가 아직도 살아계셔서 감사하다.
아버지는 결혼 30주년에 엄마랑 무엇을 하셨을까? 이렇게 대물림을 하듯 살아온 결혼 30년이 특별히 우리 부부에겐 어떤 의미일까! 뜨거운 사랑을 해서 결혼한 것도 아닌데, 서로에게 만족하며 인생을 살아온 것도 아니고, 남보다 부가 축적된 삶도, 육신이 건강한 삶을 지내온 것도 아니다.
늘 ‘결핍’이라는 단어랑 친구하면서 살아온 것 같은 날들이 모여 30년의 구슬을 꿰어낸 것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나름 둥글게 그리고 터지지 않게 잘 모아 만들어낸 못난이 구슬!
거리가 온통 붉은, 또 노오란 색이다. 겨울이 되기 전, 잎이 다 떨어지기 직전까지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고?1년의 결실을 드러낸다. 나무 하나 하나마다??그 나름의 색상을 토해낸다. 여기엔 못나고 잘난 것도 없다. 그냥 다 소중하다.
그리고 함께 이 세상을 조화롭게 만드는데 나름들이 주인공이다. 결혼 30년을 나무에 비유하면 어떨까!! 우리 부부는 얼마나 세상과 협조하며 살고 있을까? 주변 사람들과 얼마나 끈끈한 마음으로 엮여 있을까?
이제 조금씩 인생의 색이 물 들어가고 있을 거라 생각되는 오늘, 앞으로 남은 우리 부부의 색깔은 어떨지 상상해 본다. 투박하지만 골고루 물든, 눈에 띄진 않지만 단아한 색이었으면 싶다.
출근하기 전 10여분을 짬내어 향기 나는 커피와 따끈하게 데운 크로와상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감사함으로, 살포시 밀려오는 잔잔한 행복감으로 번져 나간다.
“ 결혼 30주년을 축하합니다! 저음의 젊은 주인의 인사말을 들으며 바깥을 향하는 무거운 회전문을 힘차게 열고 나온다. 우리 부부 앞에 펼쳐질 남은 인생의 무게를 씩씩하게 감당하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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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애/ 맨하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