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을 주고받는 시기가 다가오니 생각나는 선물이 몇 가지 있다.
분당이 초창기 개발되던 시기이니 학교 부근은 비포장도로에 호박 밭이 여기저기에 있어 악취가 풍기는 환경을 뒤로 하고 학교에 등교를 했고 서울 토박이인 나에게 학교 주변의 풍경은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시골 풍경 그 자체였다. 철없이 자연이 아름답다고 말을 하던 시절이니 말이다.
우리 반 학생 중의 한 친구가 마늘 농사를 했었는데 도시의 찌들은 생각들이 거의 없었던 곳이라 교사라는 직업은 그리 천대받는 직업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첫 수확한 마늘을 쌀 포대(옛날엔 브라운색 종이봉지에 쌀을 넣었다)에 가득 담아 학생편에 학교로 날라졌고 부모님의 참으로 감동적인 쪽지가 있었다. 내가 받은 첫 선물의 값어치는 계산이 어려운 것이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산길을 걸어 성황당을 지나 찾아간 학생네 집, 그 당시에는 가정방문이라는 제도가 있어 수업이 끝나면 그렇게 가정을 찾아다니곤 했다. 다른 이야길 하지 않아도 학생의 집을 보면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돌아서 나오는데 지푸라기에 곱게 싼 계란을 손에 쥐어주는 학생의 어머니, 따뜻한 계란만큼 마음도 따뜻했던 시간.
첫 아이를 낳으려고 출산 휴가를 준비하면서 출근한 어느 날, 나의 책상에 놓인 지구본만한 호박 한덩이…. 아이 낳고 호박이 좋다고 무게가 거의 10킬로에 육박하는 호박을 가져온 나의 제자. 나의 아름다운 기억의 선물이다.
받아서 너무 고맙고 주면서 즐거운 것이 선물이다. 부담스럽고 아쉬운 마음이 있다면 선물로써의 의미는 이미 상실을 한 것이다. 그야말로 뇌물이 되는 것이다. 요즘 선물과 뇌물을 구별을 못해서 생기는 일들이 많다 보니 함부로 선물하라는 말을 수업 시간에 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을 즐겁게도 하고 힘나게도 하는 것이 선물이다.
나의 마음을 담뿍 담아 드리는 선물은 이 세상 어느 것보다도 힘이 있다.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주어진 일에 열심히 다하고 난 후에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평가도 선물이 주는 의미인 듯하다.
한국학교에서 교사를 하다 보면 참 마음에 어려운 일들이 많다. 그렇다고 나의 일들을 남에게 푸념하기도 자존심이 상하고 그럴 때 함께하는 동료교사들의 선물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강력한 파워가 있지 않을지.
오늘도 한국학교에서 묵묵히 자신의 시간을 희생하면서 주어진 우리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교사들에게 사랑이 가득 담긴 나의 선물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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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연성 통합 한국학교 VA 캠퍼스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