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왠지 답답하세요? 우린 심리카페서 인생상담 받아요”

2018-10-31 (수)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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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의 불안·스트레스 관리” 최근 심리상담 수요 크게 늘어

▶ 강남·홍대 등 심리카페 인기, 편안한 분위기서 과학적 검사

“왠지 답답하세요? 우린 심리카페서 인생상담 받아요”

2017년 3월 서울 강남구 강남역 근처에 문을 연 심리 카페 멘토에서 젊은 연인들이 심리 검사와 상담을 하고 있다. <멘토 제공>

“왠지 답답하세요? 우린 심리카페서 인생상담 받아요”

서울 강남구 강남역 근처의 심리 카페 멘토에 심리 상담 후 기념 사진을 찍거나 상담 후기를 남길 수 있는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멘토 제공>


문턱 낮아진 심리상담… 심리 카페 열풍

심리상담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굳이 병원에 갈 정도의 정신적인 문제가 없어도 일상적인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6년 정신질환 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신건강 문제로 전문가와 상담한 경우가 전체의 9.6%로 5년 전(7.0%)에 비해 2.6%포인트 증가했다. 미국(43.1%), 캐나다(46.5%), 호주(34.9%) 등에 비하면 턱없이 낮지만 앞으로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심리상담소 에브리마인드의 이서현 대표는 “우울증을 앓거나 정신질환이 없어도 누구나 일상에서 흔히 느끼는 우울, 불안, 스트레스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며 “그 방법 중 하나로 심리 상담이 각광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을 찾는 상담자 수는 일주일에 40여명이다. 지난해 8월 문을 열 당시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주로 일상에서 다른 이들과 관계 맺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문을 두드린다. 남편과의 갈등으로 이곳을 찾은 김혜미(가명ㆍ32세)씨는 “친구나 가족은 말해도 ‘어쩌겠어, 참고 살아야지’라고 하는데, 상담에서는 ‘내가 어떤지, 그래서 남편과 왜 틀어졌는지’를 같이 생각해준다”며 “나를 이해받고, 온전히 내 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카페에서 가볍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심리 카페도 급증하는 추세다. 카페라는 친근한 공간을 활용해 심리 상담을 해준다. 커피 등 음료를 주문하면 심리 검사를 받을 수 있고, 검사결과에 맞춰 상담자격증을 보유한 전문가들이 20분~1시간 상담해준다. 검사 종류에 따라 비용은 1만5,000~6만원. 2010년 2월 인천에 문을 연 카페테라피는 국내 첫 심리 카페다. 이배영 카페테라피 대표는 “사람들이 병원이나 전문기관에서 상담받는 걸 꺼려하는 걸 보고 좀더 편안하게 상담받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카페를 열었다”며 “간단한 심리 검사만으로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1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에 문을 연 심리 카페 멘토도 현재 전국에 12개 지점을 운영할 정도로 성장했다. 김화숙 멘토 대표는 “연애, 취업, 진로 등에 고민이 많은 젊은 층의 상담 수요가 많다”며 “과학적인 검사로 자신이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 분석해 적극적으로 현재의 고민을 해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연인 관계상담이 70%… 더 나은 삶을 추구

심리 카페를 찾는 이들 대부분은 젊은 연인이다. 과거 점집이나 사주 카페에서 궁합을 맞춰 보던 젊은 연인들이 최근에는 심리 카페에서 각자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는 것. 홍익대 앞 ‘멘토’ 안 벽에는 젊은 연인들이 상담 후 남긴 후기를 적은 메모가 빼곡히 붙어 있다. 교제 기념일에 방문한 연인들은 ‘서로를 알게 돼 너무 좋았다’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게 됐다’ ‘상대에게 더 잘해야겠다’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남자친구와 심리 카페를 방문한 이성은(21)씨는 “궁합처럼 생년월일이나 기운 등 타고난 것이 아닌 과학적인 방법으로 서로의 생각과 성격, 취향을 분석하는 점이 기존 사주 카페와 다른 점”이라며 “내 행동이 뭐가 잘못됐는지, 왜 많이 싸웠는지 알게 돼 앞으로 더 나은 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씨뿐 아니라 이곳을 방문하는 숱한 연인들은 심리상담으로 현재보다 더 행복해지는 관계를 꿈꾼다.

최근에는 진로를 고민하는 청소년 단체나 회식을 겸해 상담을 신청하는 직장인 등 단체 모임도 늘고 있다. 직장상사는 직원에게 적합한 일을 찾아주기 위해, 직원들은 자신의 일이 잘 맞는지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카페를 찾는다고 했다. 김화숙 멘토 대표는 “과거와 달리 수평적인 직장문화가 확산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자리를 필요로 한다”며 “심리 검사를 통해 직장 내 구성원들끼리 소통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했다. 멘토와 카페테라피에 따르면 카페를 찾는 이들의 60~70%가 연인이며, 20~30%가 직장인, 나머지는 부모와 자녀 등 가족관계다.

심리 카페는 병원 치료로 이어지기 전에 병을 예방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자부한다. 김화숙 대표는 “현대인들 대부분이 우울과 불안을 안고 산다”며 “일상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닐지라도 상담은 현재보다 더 행복해지고,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우려의 시선도 있다. 제대로 된 검사 방법과 전문가의 상담이 아니면 자칫 상담이 독이 될 수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취업난이 심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신이 되고자 하는 것과 현실의 간극이 크다 보니 젊은층들이 심리 상담을 많이 받고 있다”며 “하지만 비전문적인 상담은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키거나, 멀쩡한 사람도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진단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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