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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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가난한 사람에게 오시나 보다

2018-10-03 (수) 조민현 요셉신부/팰팍 마이클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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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오후에 성당에서 엉거주춤 앉아 기도하고 있는 스패니쉬 일꾼 페드로를 우연히 만났다.

사람좋게 보이고 힘들게 하루 하루 먹고 살아가는 우리 팰팍에 넘쳐나는 가난한 불법체류자이다.성당안에서도 왜 그런지 자신없이 기웃기웃 남의 눈치를 본다. 그래도 기도는 너무 너무 잘한다. 절실하게 기도하는 그의 모습에 마음이 뭉클하다.

안되는스패니쉬 말로 겨우 알아들은즉 자기들 기도모임이 옆동네 릿지필드에 홀을 빌
려서 하는데 다음달부터 쫓겨난다고 한다. 페드로가 초대를 하여 몇 주후에 그 기도모임에 갔다. 한 백여명의 과테말라 일꾼들이 모여 기타치고 드럼치고 손벽치고 노래하고 심령기도하며 대단했다.


그들이 여기에서 쫓겨나면 앞으로 갈데가 없단다. 그런데 그들의 기도와 찬미를 가만히 보며 예수님의 길잃은 양 한 마리 복음 말씀이 너무 절실하게 마음이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사제가 기도하는 신자들을 몰라라 할 것인가?

그래서 빼짱좋게 우리 팰팍 성당으로 오라고 했다. 미국신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어쩔지, 한국신자들이야 내가 뻣대고 우기면 되지만 약간 걱정이 됬다. 하지만 일단 가난한 사람편에 서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말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대로 일을 저질렀다.

이제 팰팍 마이클 성당으로 들어온 과테말라 이민자들이 토요일 밤 7시부터 그들만의 성령기도회를 갖기 시작했다. 사실 미국신자들은 토요일 5시30분 미사만 끝나고 불이 나듯 도망가 버리고 성당이 텅비어 아무도 없다. 미사 시간만 겨우 오고 끝나기가 무섭게 도망가는 미국 신자들에게 토요일 밤에 성당에 뭐가 이루어지는 지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래서 토요일 밤 성당이 그들만의 것이 되고 완전히 쿵짝작 쿵짝작 난리가 났다. 이들이 이러니깐 릿지필드
에서 쫒겨난 것이다.

성당밖 찻길 건너서도 꿍짝 꿍짝, 우리 학교 뒷편 파킹장까지 꿍짝, 이게 성가인지 뽕짝 카바레 노래인지 구분이 안 간다. 나는 속으로 옆집에서 신고할 까 경찰이 올까 오래된 미국신자들이 불평을 할까 아슬아슬 한달을 보냈다.

한사람 한사람씩 스패니쉬들이 눈치를 보며 성당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육개월이 지나면서 점점 그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이제는 자신있게 성당에 발 꼬고 앉아 제 집인듯 재잘거리며 떠든다.

이태리 아이리쉬 미국인들이 점점 성당에서 멀어지고 한국인 신자들도 노령화가 시작됬다. 앞으로 성당은 이 가난한 스패니쉬 것이 될 거 같다. 잘먹고 잘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점점 줄어든다. 하느님은 가난한 사람에게 오시나 보다.

<조민현 요셉신부/팰팍 마이클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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