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 상흔이 가득했던 황무지가 선교현장으로 탈 바꿈
▶ ‘아프리카 선교가겠다’ 서원,40년만에 선교의 첫발 내딛어... 르완다 키갈리선교센터. 국제학교,신학교육의 사명 감당
키갈리 도브호텔의 수영장을 빌려 어린이들에게 세례식을 가진후 참석자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산호세에 본부를 두고 있는 월드미션 프론티어(대표 김평육 선교사)가 아프리카 복음화 사역에 나선지가 25년이 되었다. 김평육 선교사의 1994년 르완다 내전 현장 취재를 계기로 설립된 월드미션 프론티어는 사반세기 동안 아프리카 5개국에서 13개의 선교센터건립과 전도와 구제, 교육, 의료 사역등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오고 있다.
본보 종교인 칼럼 필진인 우남수 목사(행복연구원 길라잡이)의 월드미션 프론티어의 아프리카 선교현장 방문기를 5회에 걸져 연재한다.
1.르완다 키갈리 선교센터
오래동안 마음에 품고 기도해왔지만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하다 건강이 허락할 때 하루라도 빨리 다녀와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한달여 간의 아프리카 여행일정의 비행기표를 구입하였다.
여행을 떠나면서 세가지 일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아내는 나름대로 40년 전에 아프리카 선교를 가겠다고 서원한 그 첫발을 이제 디디는 셈이었다. 나는 15년을 호주 원주민 선교를 했던 일을 생각하며 아프리카 선교가 얼마나 다른 가를 비교하며 배우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실버 미션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었다.
월드미션 프론티어(대표 김평육선교사)의 아프리카 선교현황을 신문이나 기도편지를 통해서 알아왔었다. 그동안 기도 후원으로 섬겨온 선교사역의 열매를 직접 보고 그 광범위한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고자 하는 목적을 마음에 두었다.
샌프란시스코를 6월 28일 오후 2시 출발하여 암스텔담을 거쳐 르완다 수도까지 비행시간만 20시간이 넘었다. 일생 처음으로 최장 시간의 비행기를 탄 셈이었는데 몸이 좁은 공간에 짖눌려 있어 허리의 통증이 더 심했다. 어둠이 깔린 키갈리 공항을 빠져나왔을 때는 예상외로 시원한 밤 바람이 피곤을 풀어주었다. 마중 나온 현지인 존 목사님과 최영애 선교사님의 따듯한 영접이 지친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었다.
키갈리 공항에 도착해서 놀란 것은 비행기 출구에서부터 세관을 통과하는 동안 모든 직원이 젊은 르완다인 일색이었고 한 사람도 다른 피부를 가진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밤거리를 질주하는 차 창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은 아프리카의 정글이 아니었고 수많은 차량과 오토바이들이 매연을 뿜으며 질주하는 서구화된 도시였다.
다음날 아침 숙소에서 약 10분 거리에 있는 월드미션 프론티어 선교센터를 찾았을 때는 선교회가 발행하는 특집 신문에서 사진으로 보던 건물과 센터의 전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최첨단의 키갈리시의 도심지 한복판에서 30분정도 거리에 있는 언덕에 자리잡은 선교센터는 주위에 신흥주택단지가 들어차 있어 마치 언덕 위의 성곽에서 마을을 내려 보는 것 같았다. 정문을 들어서자 오른쪽에는 푸른 잔디의 운동장이 자리잡았고, 왼쪽에는 다목적홀과 뒤로는 큰 예배당, 그리고 더 들어가니 2층의 신학대학원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교실들이 지어져 있고, 채소밭, 외양간, 유치원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체육관 공사가 진행중이었고 앞으로 부족한 강의실과 기숙사 시설을 건축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우남수 목사(오른쪽)가 침례에 앞서 세례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월드미션 프론티어 키갈리 센터에는 국제학교와 과학기술고등학교 신학교를 통해 교육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선교센터 사무실에는 마침 산호세에서 오신 노신영 박사님이 신학대학원 졸업생들의 논문심사와 면접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계셨으며 옆에는 도서관과 유치원 교실들이 질서 정연하고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고등학교 학생들도 예쁜 유니폼을 입고 향학열이 불타는 모습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대학원 강의실에 바닥공사가 마쳐지지 못했고, 책상, 컴퓨터, 프로잭터 등 교육 시설을 갖추려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1994년 르완다 내전 당시에 처음 프로잭트를 시작할 때 이곳은 황무지였고 주위에는 전쟁의 상처인 총격의 흔적이 빈민촌 집에 가득했던 곳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24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변화된 도시로 탈바꿈한 곳에 선교센터를 세우신 하나님이 미래를 내다보며 사역을 준비해주신 것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7월 2일 주일예배의 하이라이트는 어린이교회의 예배였다. 유치원 어린이로부터 초등학교 어린이들 400여 명이 예배당을 가득 메웠으며 흥겨운 찬양팀과 성가대의 40여분이 넘는 춤과 노래는 예배당을 흔들어 놓았다. 예배에 참여한 모든 어린이들의 심령을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워 하나가 되게 하였다. 설교는 현지인 사역자들의 불을 토하는 듯한 열정 어린 설교였다. 예배후에는 시내에 한인이 경영하는 제과점에서 일주일 모은 빵을 가져와 모든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줄 때 좋아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현대판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는 듯하였다.
키갈리 어린이교회 주일 예배에서 어린이 찬양팀의 뜨거운 찬양. 400여명 어린이들이 참석했다.
찬구구 선교센터를 방문하고 (방문기는 다음호에 게재) 키갈리로 돌아와 7월 7일은 새벽5시부터 세례식에 참석할 준비를 하였다. 아침 7시부터 한시간 동안 침례식으로 거행하는데 순복음교회가 운영하는 도브 호텔의 수영장을 여러 교회가 이용하기 때문에 그날의 일정에 따라 월드미션 프론티어가 아침 7시에 시작하는 것이었다. 40여 명의 어린이들이 세례복을 갈아 입었고, 두 명의 현지인 목사님이 침례를 거행하였다. 세례하기 전 간단히 말씀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세례를 통한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을 전했다.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한 사람 한 사람 물위로 올라 올 때는 호텔 이름인 도브(Dove)와 같이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비둘기가 임했던 것처럼 비둘기가 내려 앉는 듯하였다. 세례식은 그것으로 마친 것이 아니었다. 선교센터로 돌아와 아침 9시부터 4시간동안 축하 잔치가 계속되었다. 선교센터의 스텝진들과 세례 받은 아이들과 학부형과 친척과 친구들이 모인 축제였다, 어린이 찬양단, 고등학교 찬양단, 초청된 대학교 찬양단들이 2시간 가량 찬양으로 뜨거웠다. 현지인 목회자의 설교는 다목적홀(횃불선교센터)에 모인 4백 명의 아멘으로 은혜를 나누었다. 순서 중에 김평육 대표선교사의 축하 메시지 시간을 나에게 말씀을 전해 달라고 하여 “What is the will of God”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4시간의 축제를 마치고 월드미션 프론티어가 마련한 오찬을 통해 친교의 시간이 이어졌다.
마침 이곳 지역 신문을 통해 르완다 국회가 앞으로 신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사람은 목사로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앞으로 월드미션 프론티어 신학교에 학생들이 몰려들 것으로 기대하고 준비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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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