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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등(無盡燈)] 행복해야 할까?

2018-07-26 (목) 동진 스님/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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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물이 최고다. 이 뜨거운 때 물 없음 어떻게 사나, 매일 감사하게 된다. 여름에 이 중의 중요 일과는 넓고 넓은 정원에 물 주는 일이다. 물 주고 있다 보면 어느새 허밍버드, 벌 나비 날아오고 온갖 새들이 흐잌, 싶을 정도로 많이 와서는, 고인 물에 샤워하면서 재재재, 그렇게 좋아 할 수가 없다.

그 즐거운 모습에, 이 중도 아무 가진 것 없어도 행복해 진다. 행복이 뭐냐 물으면 이거다, 딱 잘라 말 못하면서도, 가만 보면 요즘 사람들은 반드시 행복해야만 하고 그것을 남이 알아줘야만 하는 거처럼 산다. 나 행복해요, 라는 걸 불특정 다수에게 내일, 보이려고, 정작 지금, 테이블에 같이 앉은 이의 행불행은 아랑곳없이, 나온 음식 사진을 찍어댄다. 분명, 여기, 지금, 음식, 같이 있는 사람, 때문에 행복했던 거 같지 않았는데, 찍어서 소셜네트워크 상에 올리고선 행복했다 한다.

거짓말이다. 배신감 느껴진다. 실지로, 한 조사에 의하면 에스엔에스에 올린 그 순간이 진정 행복했냐는 질문에 대다수가 아니다, 라고 답했다고 한다. 거짓으로 행복을 드러내며 살고 있다. 왜 그러는 걸까 ?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하면 굳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충분히 좋다. 행복해 보,이,고, 싶은 건 이미 행복이 아니다. 애니웨이 행복해야만 하나, 우리는? 행복이 뭔지? 답이 막연하다면, 일단 어떨 때 행복하지 않나, 를 생각해 보면 된다.


우리는 뭔가 괴로움이 있을 때 불행하다, 그럼 괴로움이 없으면 행복이겠다. 보자, 우리는 뭔가 일이 잘못될 뻔 하다가 잘못되지 않았으면, 가령 사고 날 뻔 하다 안 났으면, 다행이다, 이구동성 말한다. 많을 다, 행복할 행, 이다. 행복이 많다, 즉, 괴로울 뻔 하다 안 괴롭게 된 것, 그러니까 지금 이대로인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하고, 많기, 까지 하다는 것이다. 당신이 현재 아무 괴로움이 없다면 굳이 행복하려고 뭘 하지 않아도, 이미 행복한 사람이다. 아무 걸림, 장애가 없으면 행복이다. 아무리 백만장자여도 내 마음이 괴로우면 행복 아니다. 마음에 괴로움이 있으면 진수성찬도 부귀영화도 사랑도 다 괴롭다.

이걸 인정하는 일이 쉽게 안되는 게 중생심이다. 그래도 좋은 차가 있으면, 돈이 많으면 행복할 거 같다. 그러나 꽃향기가 좋으면 꽃이 문제없지만 향기 알러지 심한 이는 세상의 꽃이 괴로움이다. 꽃이 문제가 아니다. 내 괴로움이 문제다. 좋은 음식을 먹어서 행복한 게 아니고, 이미 행복한데 맛있는 음식까지 있어서 행복하다 느끼는 거다. 행불행이 내 안에 있다는 거다. 그러므로 행복을 밖에서 찾을 게 아니라, 지금, 나는 괴로운가, 괴롭다면 어째서 괴로운가, 그 괴로움의 원인을 찾아 제거 하는 것이 행복을 찾는 가장 빠른 길이다.

맘은 괴로운데 아무리 좋은 거 찾아가져 봐야 행복해지지 않는다. 최소 불자라면 '고집멸도'를 알고 있을 것이다. 집착으로 괴로운 것을 멸하여, 도, 행복을 얻는 것이다. 현재 내게 큰 괴로움이 없다면, 멸할 게 없으니 이미 행복임을 알자. 그것이 자족이며 소유지족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우리는 행복해야만 하는 거 아니다. 행복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류의 말에 강박 같은 거 갖지 말기 바란다. 각자의 행복은 다 다르고 행복, 이라는 정의조차 실은 모호한 것이다.

남이 행복하다고 내보이는 거, 진정 행복이 아니라잖는가. 어쩌면 이런 보여주는 행복의 유행은 자족을 모르고, 타인과 똑같아져야 행복하다 여기는, 일그러진, 이 시대의 한 단면인지도 모른다. 행복이라는 커트라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알고 보면, 따지고 봐도, 이 세상엔 한 가지로 정의된 행복은 없다. 신기루 같은 행복 찾기를 내려놓고 지금 이대로 괜찮다, 했으면 한다. 작은 물웅덩이 하나로 최대로 행복한 저 새들처럼. 아마도 마음이 깃털처럼 금방 가벼워질 것이다. 이미 가지고 있던, 고,요,한, 행복을 새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동진 스님/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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