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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한국 기업의 미국 진출 -Ⅰ

2018-07-16 (월) 문주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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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만 회계사를 고르는 건 아니다. 회계사도 손님을 고른다. 특히, 미국에 진출하겠다는 한국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웬만하면 상담만 하고 돌려보내는 사람들 - 오늘에야 그 다섯 가지 유형을 밝힌다. 물론 순전히 내 주관적인 기준이다.

첫째는 돈 갖고 딴 짓 하는 사람들. 미국 가서 달러 벌어오겠다고 해 놓고서는, 엉뚱하게 맨해튼에 아파트부터 사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부동산 투자도 외화벌이 수단이다. 그리고 그 아파트를 직원 숙소로 쓰겠다고 하지만, 엄연히 사업과 부동산은 처음 송금이나 대출목적부터 다르다. 내가 갖고 있을 것 같은(있지도 않지만), 한국의 은행 인맥이나 국세청 인맥을 어떻게 이용해볼 사람 같으면, 상담비 몇 백 달러 받는 것으로 나는 끝낸다.


둘째는 한국에서 이미 망해가는 사람들. 한국에서 통닭을 팔든, 커피를 팔든, 더 이상 장사가 안 되니, 그 탈출구로 (또는 한국 주식시장에 보여줄 근사한 '그림'이나 '시그널'을 위해서) 미국에 성급하게 진출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주머니가 두둑해야 놀음도 하는 것이지, 주머니가 비면 초조해지고, 그러면 무리수를 두게 마련이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새기 마련이다.

셋째는 둘째 낳고 첫째 애 신경 덜 쓰는 부모 같은 사람들. 항상 하는 말이지만, 미국 진출은 둘째 아이를 갖는 일이다. 새로 태어난 둘째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첫째에게 소홀해서도 안 된다.

한국 어느 프랜차이즈가 맨해튼에 화려하게 입성했을 때(오래전 얘기다), 당시에 한국에서 만난 어느 가맹점주로부터 이런 불평을 들은 적이 있다. '회사가 밖으로만 돈다. 그래서 우리한테는 신경도 안 쓴다.' 그런 집이 잘될 리 없다.

넷째는 현지화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 마음으로는 세계화(globalization, 글로벌화)를 외쳐도, 행동만은 철저하게 현지화(localization)가 되어야 한다.

켈로그가 인도에 갔을 때,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인도인들의 식습관을 몰라서 처음에는 고전했다. 뉴욕에서 잘 되던 장사가 뉴저지만 넘어가도 안 되기도 하는데, 하물며 미국 시장이나 규정, 현지 상황을 모르고 덤비는 사람들이 있다. 세계화는 곧 철저한 현지화다.

마지막으로, 자기 패도 보지 않고, 고스톱 치겠다는 사람들. 그 흔한 SWOT(장점, 약점, 기회, 위협) 분석이든 뭐든, 철저한 자기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피지기를 해도 될까 말까 한 세상인데, 경쟁자와 시장 상황은 고사하고, 내 자신도 모른다? 자기 돈으로 망하겠다는데 내가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실패가 뻔히 보이는 사람을 고객으로 모실 수는 없지 않은가.

<문주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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