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용한 제주 찾고 있나요? 그럼 삼달리는 어때요

2018-06-29 (금) 제주=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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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 숨은 명소

조용한 제주 찾고 있나요? 그럼 삼달리는 어때요

삼달리에는 이렇다 할 관광지가 없어 호젓한 제주 농촌 분위기를 즐기기에는 오히려 낫다.

제주 여행에서 렌터카는 기본이지만, 운전이 예전처럼 쉽지는 않다. 시내 구간의 교통체증은 서울 못지않고, 웬만한 간선도로에도 차량이 넘쳐난다.바깥 풍경 본다고 주춤거리거나 천천히 드라이브를 즐기다가는 ‘체증 유발 운전자’로 몰리기 십상이다.

서귀포 성산읍 삼달리는 그런 면에서 여행지 같지 않은 제주다. 이름난 대형 리조트나 관광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 좋은 현대식 카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차량이 많지 않은 도로에 무심하게 툭 떨어진 붉은 동백꽃과 돌담 너머 농가 마당에 굳이 수확하지 않은 노란 감귤이 더러 시선을 잡을 뿐이다. 마을 남쪽 해변에는 고운 모래와 에메랄드 빛 바다 대신 새카만 현무암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한 귀퉁이에는 또 검은 돌로 두른 ‘불턱’이 오래된 유산인 양 처연히 버티고 섰다.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나가기 위해 준비하거나 휴식하는 장소였다는 설명이 붙어 있지만, 눈여겨보는 이는 거의 없다. 방파제와 접하고 있는 식당과 민박은 손님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처럼 요란스럽지 않다. 노랗게 꽃을 피운 돌담 주변의 유채도 주인장의 소일거리 정도로 보인다. 올레3코스에 속하는 삼달리는 그래서 가장 제주다운 제주인지도 모른다.

바닷가에서 멀리 않은 ‘김영갑갤러리두모악’은 여행객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삼달리와 닮았다. 루게릭 병으로 마흔여덟 짧은 삶을 마감한 김영갑은 제주 사람만큼 제주를 사랑한 사진가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1982년부터 제주를 오르내리며 사진작업을 하다, 1985년 아예 섬에 눌러앉았다. 밥 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사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래며 제주의 ‘외로움과 평화’를 사진에 담았다. “(제주 들판은) 풀벌레를 초대해 반주를 하게 합니다. 구름과 안개를 초대해 강렬한 빛을 부드럽게 만들어 줍니다. 해와 달을 초대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줍니다. 눈과 비를 초대해 춤판을 벌이게 합니다.”(휴먼앤드북스,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중) 그의 작품은 제주의 아주 사소한 것에까지 애정을 두고 있다.


전시관 명칭인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다. 현재 갤러리에는 용눈이오름의 부드러운 능선을 계절마다 찍은 작품이 걸려 있다. 360개나 되는 제주의 오름 중 한라산을 제외하면 주민들조차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시절부터 기록해 온 사진이다. 그렇게 20년 동안 줄기차게 중산간 오름에 매달려 온 그가 본 것은 ‘이어도’였다. 이어도는 제주 주민들이 고달픈 섬 생활을 견디게 해 주는 희망이고 이상향이다. 그러나 희망은 멀고 욕망은 가깝다. 방목장이 골프장으로, 중산간 들판이 리조트로 변해 버릴 즈음, 그는 “제주 사람들의 마음에서 이어도는 지워지고 있다”고 썼다. 제주 본래의 들판과 초원과 바람과 햇살은 이제 그의 사진에나 남았을지 모른다.

삼달국민학교 운동장이었던 갤러리 앞마당에는 현무암을 둥그렇게 쌓아 대형 화분을 만들어 놓았다. 그 사잇길은 자연스레 미로가 됐다. 병원에서 3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진단을 받고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누웠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시작한 작업이었다. 관사였을 법한 뒷마당의 건물은 무인 카페로 꾸몄다.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풍경이 그의 삶처럼 소박하다. 커피나 차를 내려 마신 후 컵을 씻어 놓아야 하는 과정이 번거롭다 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내 집 같은 편안함도 느껴진다.

<제주=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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