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책의 서러움

2018-06-04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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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사람 같으면 서러워서 눈물을 흘릴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이 책을 멀리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복잡한 네거리를 건너가면서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정말 위험천만이다. 스마트폰이 어른들의 장난감이 되었다. 옛날 전차나 버스에 타면 모두 신문이나 잡지를 읽고 있었는데 요즘은 핸드폰을 뒤적거리고 있다. 교회 예배시간에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스마트폰을 꺼달라는 것이 늘 하는 광고이다.

서울에 새로운 명물책방이 생겼다고 한다. 순화동천(巡和洞泉)이다. 나도 한번 가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한데 말만 들었다. 한길 출판사가 막대한 투자로 개장한 서점으로 엄청난 수량의 책이 진열되었을 뿐만 아니라 50명씩 수용할 수 있는 큰 강의실이 네 개나 있어 날마다 문학 강의와 도서 소개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종로서점이 독서인들의 만남의 장소였으나 지금은 순화동천으로 바뀐 모양이다.

역시 서울에 별마당 도서관이라는 것이 생겼는데 5만권의 책이 진열되었다고 한다. 매우 반가운 조국의 문화 소식이다. 책방으로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엘아테네오 서점이 세계 최대의 서점이다. 1919년에 개점한 가게인데 5만권의 장서와 시민을 위한 많은 만남의 광장을 마련하고 있는 서점이다. 책을 팔려는 노력이 있어도 국민이 책을 안 읽으면 모든 것이 허사이다.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소학교(초등학교) 선생님 K씨가 교사직에서 퇴직당하였는데 나의 부친이 그 분께 고서점(古書店)을 열어드렸다. K선생님은 나에게 독서지도를 시작하셨다. 매주 한 권씩 책을 읽게 하였다. 주로 소설이었지만 이 독서의 습관은 내 평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책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책을 읽지 않고 날마다 변화하는 세계를 알 수 없다. 책은 공기처럼 우리를 새롭게 하고 배의 돛처럼 우리를 전진시킨다. 학교 교육의 첫걸음은 읽기를 배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려운 학문이나 깊은 예술이나 심오(深奧)한 종교도 책을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벗 중에 가장 틀림없는 벗이 책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결코 고독하지 않다. 책의 사상이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책의 변화가 나를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결코 좁은 세계에 살지 않는다. 책이 과거와 미래의 세계까지 나의 울타리를 넓혀주기 때문이다.

한 권의 찢어진 책이 나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전쟁 때 나는 피난선을 타고 한 달을 지낸 일이 있다. 경찰 한 사람이 작은 책을 찢어 엽초를 말아 피우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신약성경이다. 법대 1학년이었던 나는 늘 포켓용 영한사전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었는데 그것을 경찰관에게 내밀었다. “아저씨의 책과 내 책을 바꿉시다.” 경찰관은 두 책을 비교하여보더니 얼른 바꾸어 주었다. 이미 마태복음 17장까지는 담배연기로 사라진 성경이었으나 나는 성경을 한 달 동안 몇 번 통독하였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다시 평화로운 세상이 된다면 성경을 좀 더 깊이 공부할 필요가 있다.” 그 때는 물론 신학교 같은 데는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미 신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성경에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니”(시편 119:105)라는 말이 있다. 성경을 가까이 할 때 그 말씀은 나의 진로를 가리켜 주는 등불이 된다는 뜻이다. 어떤 종교든지 경전을 가지고 있으며 그 경전이 신앙생활의 기초가 된다. 신앙의 기초도 역시 책인 것이다. 책 팔리는 양이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말한다고 하는데 과연 우리가 자랑하는 21세기 한국의 문화수준은 어디까지 와 있나?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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