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숲에는 비가 두 번 내린다

2018-06-01 (금) 김창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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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내리는 비가 생명권에 끼치는 영향은 막중하다. 숲에 내린 비는 토양을 살리고 농지를 비옥하게 만든다. 숲에 내린 비는 수많은 동식물을 먹여 살린다. 숲에 내린 비는 상처받은 생태계를 치유하고 회복한다.

숲에 내린 비는 탁월한 용매제(溶媒劑)다. 땅속으로 들어가 미네랄, 인, 질소, 철, 아연 등을 녹인 다음 그것을 바다로 흘려내려 물고기의 기본 양식이 되게 한다. 그것이 논과 밭의 땅 깊이 스며들어 지하수를 만날 때, 그 지하수는 식물 성장에 필요한 영양 엑기스가 된다.

숲에는 비가 두 번 내린다. 처음 내리는 비는 강우(降雨)다. 지상에 낙하한 비는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계곡을 타고 평지로 내려간다. 두 번째 내리는 비는 방출(放出)이다. 숲의 일부분인 나무 이파리와 뿌리, 그루터기 주변의 이끼가 저장했던 빗물을 서서히 방출함으로 이루어지는 발출(發出)작용이 두 번째 비인 것이다.


숲은 거대한 저수지다. 거대한 폭우가 쏟아져도 숲은 스펀지처럼 빗물을 깊이 빨아들여 보존한다. 날이 맑게 개이면 그때부터 서서히 발출하여 아래로 흘려보낸다. 그래서 산속 숲에선 비가 두 번 내린다.

작년 9월 초 무더운 날이었다. 위사이콘 계곡에 산책을 나갔다가 산 속에서 큰 비를 만났다. 다행히 상수리나무가 좌우로 줄지어 있어서 상수리나무 숲으로 몸을 피했다. 놀랍게도 상수리나무 넓은 이파리 덕분에 젖지 않은 몸으로 하산할 수 있었다. 그 다음날 산을 다시 찾았다. 산 아래 강물은 산허리까지 가득히 차올라 힘차게 흐르고 있었고, 계곡이 물은 하얀 포말을 품어내면서 바위를 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맑게 개인 이튿날에도 산에는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산 아래 토양이 메마르지 않기 위해선 산속의 울창한 숲이 필요하다. 인간 사회도 메마르지 않으려면 숲 같이 정화, 조절, 치유의 역할을 감당하는 헌신된 종교인의 역할이 필요하다. 종교인은 각박한 인간 세상에서 사랑과 화합을 담아내며 삶의 속도를 조절해주는 저수지이며 숲이다. 최근 소천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숲의 역할로 유명한 인물이다.

유대인 랍비 학교 야브네 아카데미는 이스라엘을 위기 속에서 건져낸 역사로 유명하다. AD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포위되어 항복을 앞두고 있을 때다. 이때 저명한 랍비 벤 자카이가 디도 장군 앞에 나타나 한 가지 청원을 한다. “귀하가 예루살렘을 다 훼파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내가 서쪽 해안의 작은 마을 야브네에 가서 학교를 하나 세워 토라와 탈무드를 가르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오.”

“나라가 다 망해가는 판에 학교 하나 세우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가.” 디도 장군은 그 자리에서 허락했고, 랍비 자카이는 야브네로 들어가 학교를 세웠다. 이 소식을 들은 강호의 젊은 인재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고, 여기서 수많은 랍비와 인재가 배출되어 1948년 이스라엘 독립의 초석이 되었다.

당신은 리더인가. 산속의 숲이 되라. 만일 숲이 될 수 없다면 숲을 키우는 현대의 벤 자카이가 되라. 둘 중에 하나가 되라.

<김창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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