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작부인

2018-06-01 (금) 고명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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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올 유월은 집안에 경사가 겹쳤다. 남동생의 큰아들과 여동생 큰아들의 혼사가 있을 예정이다. 아기 때부터 지켜보았던 조카들이 장성하여 제 짝을 만나 혼례를 올린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 마냥 어린아이 같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초등학교 어린 나이에 낯선 타국으로 이민을 왔지만 기죽지 않고 무탈하게 자라준 조카들이 항상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쓰디쓴 커피 맛의 문화 차이도 슬기롭게 극복하고 굳은 혀로는 따라가기 힘든 언어도 쉽게 터득하여 부모의 설고 어설픈 부분까지 챙겨주었다.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빵 가게와 핸드폰 가게 등에서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 썼다. 시간을 쪼개 사회에 유익한 봉사 활동을 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마쳤다. 교사임용을 기다리고 있는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남동생 아들과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여동생의 아들은 순탄하지만은 않은 두 가정 이민 생활의 귀한 결실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두 장의 청첩장을 받아 들고 큰 기쁨과 함께 감회에 젖어 들었다.

우리 삼 남매는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우애 있게 지내고 있다.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데 주저하지 않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서로 고민을 한다. 기쁠 때는 넘치는 감사로 축복해주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기도로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며 남들이 흉내 내지 못할 탑을 쌓아가고 있다. 격의 없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조카들 모습을 볼 때면 부모의 마음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된다.


한 그루의 보호목(保護木)에서 이제는 장성한 자녀들이 안착할 수 있는 든든한 정신적 의자가 되어주어야 할 때다. 지금껏 불러왔던 자녀들 이름 외에도 새로운 이름과 함께 새로 마련하게 될 보금자리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문패도 달아 주어야 한다. 그만큼 부모의 숨은 격려와 응원이 있어야 가정을 꾸리는 자녀들은 집주인의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이지만 점점 그 이름에 깃든 의미가 흐려지게 마련이다. 최초의 언약과 사랑의 열기도 점점 식어가게 된다. 푸르던 봄날도 흘러가는 구름 따라 속절없이 퇴색되어 가고 지는 꽃에 묻혀만 간다. 삶의 징검다리는 나의 보폭과는 상관없이 들쑥날쑥하게 된다. 예습과 복습이 따로 없어서 아쉬움만 늘어가는 삶이 되겠지만 시작은 언제나 푸른 하늘같아야 할 것이다.

곧 시어머니가 될 여동생 집 마당 한쪽에 활짝 핀 덩굴장미가 화관처럼 휘어있었다. 빨간 장미가 사랑의 결실처럼 탐스러워 보였다. 저절로 이끌리어 코끝을 스치는 향기에 살며시 나의 입술을 내주고 말았다. 시인의 언어로 어루만지며 바람결에 스러져 안아 보았다. 그러는 나의 모습을 백발이 되어 가는 민들레가 지켜보았다. 민들레 홀씨처럼 인생의 화려한 봄날은 가고 있다는 따끔한 외마디를 들려주었다.

두 조카가 푸른 하늘같은 희망을 안고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태양이 떠오른 다음에는 노을이 찾아든다. 새 출발 하는 두 조카에게 속절없이 빠른 인생길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들려주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그 많은 호칭을 제쳐두고 아내를 백작부인이라고 부른다. 무수리 아닌 백작부인을 모시고 사는 남편이 바로 백작이 아닐까 싶다. 나의 의젓하고 사랑스러운 두 조카가 그들이 맞을 장미보다 아름다운 유월의 신부에게 백작부인 칭호를 내려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가길 빌어본다.

<고명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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